[우석훈의 경제수다방]상속세 개편과 상속자 자본주의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 격차라는 게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지적하는 얘기다. 다양한 복지정책이 강화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 격차는 좀 완화되었지만, 자산 격차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많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상위 50%가 대부분의 자산을 가지고 있고, 하위 50%는 2~3%가량의 자산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집을 가지고 있는 가계가 55~60%가량이라서 현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몇년 전 청년들에게 열풍이었던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이런 자산 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수저 같은 직관적인 표현을 조금 개념적으로 가다듬으면 ‘세습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된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상속자 자본주의’가 된다. 뭐라도 상속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출산을 하고, 상속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상속자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3포·4포를 거쳐 n포까지, 자산과 거리가 먼 청년들에게 한국은 너무 추운 곳이다.
지난 몇년간 청년들의 자산을 향한 열풍은 눈물 날 정도다. 가진 게 없으니 부채를 통한 자산 형성이 청년들의 열풍이 되었다. 주택시장에서는 영혼까지 끌어서 빚을 낸다는 ‘영끌’, 주식시장으로 오면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다. 이 흐름이 코인시장으로 오면 ‘잡코인’ 열풍이 되었다. 한 번에 큰 자산을 획득하기 위해 위험성이 극대화된 안 알려진 코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청년들의 자산 열풍이 결국 문재인 정권을 쓰러뜨리고 윤석열 정권을 세웠다.
자산 격차 강화하는 윤석열 정부
청년들의 자산 격차가 여당의 동력원이었지만, 총선 이후 윤석열이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경제정책은 종부세 완화에 이어 상속세 완화라는 자산 격차 강화 쪽이다. 강남 사는 부자들, ‘강부자’가 밀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박근혜 정권도 차마 상속세에는 손을 대지 못했었다. 상속세 최고구간은 폐지하고, 과표 하위구간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올린다. 결정적으로 5000만원인 자녀 공제를 한 번에 5억원으로 높인다. 이런 과감한 변화의 메시지는 용산 정권이 자신들을 만들어준 자산 없는 청년들의 지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재선할 것도 아닌데, 그냥 이번 임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로망을 이루고 싶은 사람처럼 거침없이 정책을 설계한다.
과연 상속세 개편안이 현실화될까. 만약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많은 흙수저 청년들의 지지로 압승했다면, 상속세 완화도 사회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당은 총선에서 완패했다. 국회 소수파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서, 대통령의 부자들에 대한 사랑만 보여줄 뿐이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공정 기조에서 뭔가 물려받을 게 있는 상속자 자본주의 쪽으로 국정 기조가 바뀌었다는 것만 확실해졌다.
원래 한국에서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은 1만명도 채 안 되었다. 문재인 정권 때 부동산 급등으로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이 많이 늘어 2022년에 1만9506명이 되었다. 그해 사망한 사람은 37만명인데, 그중에 상속세를 발생시킨 상속인은 아마 1만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사망 전에 증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집이 여러 채면 몰라도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국세청의 눈을 피해 사망 10년 전에 완벽하게 사전 증여를 하기는 쉽지 않다. 2022년이면 이미 집값이 오른 뒤라서, 부동산 폭등은 반영된 시점이다. 이걸 설명하기 가장 부드러운 방법은 100세 시대에 맞는 노인 복지가 아직 미흡해 집 한 채 정도 가진 사람은 결국 은퇴 후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대부분 쓰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자산 가치에서 부채를 빼고 나니까 자녀에게 5000만원 이상 물려줘서 상속세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2만건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더 줄어든다. 이 5000만원 공제액을 5억원으로 올려주면? 어차피 지금도 대부분의 중산층은 5000만원 공제도 다 사용하지 못한다. 결국은 이것도 중산층 감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다주택자 감세다.
거대 야당 설득할 방법은 있나
현시점에서 상속세에 대한 윤석열의 정치적 계산은 미스터리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결정적 계층은 청년층이었는데, 지금은 더욱더 세습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그럴까. 용산 주변에 상속세를 걱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은 과학적 설명은 아니지만, 현실적 설명은 될 것이다. 그의 집권 기반은 상속 자본주의가 아니었지만, 그의 통치 기반은 상속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현실과 동떨어진 집권층, 정권 망하는 지름길이다. 상속자 자본주의, 이게 윤석열이 만들고 싶은 미래 한국의 궁극적 모습인가.
우석훈 경제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