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4조 `신탁사 책준` 폭탄 금융권 비상

김남석 2024. 7. 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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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침체로 사고 발생
하도급 업체와 공사대금 마찰
신탁사 손실 규모 갈수록 커져
은행 등 대주단 위험 확대 우려
[연합뉴스 제공]

부동산신탁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주했던 '책임준공형 신탁'에서 사고가 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자금난에 빠지는 건설사가 늘면서 시공사 리스크가 신탁사 리스크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신탁사 책준' 도입 당시부터 우려했던 금융권 리스크 전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신탁사의 책준 사업장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이 24조원에 달해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경우 결국 은행 등 대주단까지 위험이 확대될 우려가 크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은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하도급 업체와 공사대금 관련 마찰을 빚고 있다. 해당 현장은 KB부동산신탁이 책임준공을 확약한 곳이다.

KB부동산신탁은 D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시공사가 지난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준공 부담이 KB부동산신탁으로 넘어갔다. 하도급업체 공사대금 결제도 신탁사가 담당했다.

갑작스런 시공사 부도에도 KB부동산신탁은 해당 단지의 준공까지 마쳤지만 마감 공사를 담당한 하도급업체 30여곳에 공사비를 주지 못했다. KB부동산신탁은 이 현장에서만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KB부동산신탁 관계자는 "전체 공사비의 90% 이상을 이미 지급한 상황"이라며 "나머지 공사비는 사업장 상황 등을 고려해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하도급업체 측은 준공 전까지 대금을 직접 지급하던 KB부동산신탁이 준공 이후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현장의 하도급 업체인 KS건설 관계자는 "KS건설을 포함해 31개 업체가 공사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신탁사는 공사비가 하도급 업체와 시공사 간의 계약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책준형 신탁은 시공사의 부도 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신탁사가 책임지고 대주단에 준공을 확약하는 상품이다. 단순히 부동산 소유자와 시공사, 대주단을 연결해 주면서 수수료를 챙기던 부동산 신탁사들이 추가 사업 수주를 위해 직접 내건 조건이다.

다만 기존 시공사에 한정됐던 책임이 신탁사까지 확대되면서 부동산 리스크가 금융권까지 확산되는 형국이 됐다. 신탁사 책준 도입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보이며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022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시장 침체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시공사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신탁사의 부담도 커졌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전체 사업비의 1%도 되지 않는 수수료를 받는 것이 고작인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확약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중소형 신탁사는 한두개 현장에서만 문제가 발생해도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공사에 이어 신탁사까지 위험해지면 결국 다음 순서는 돈을 빌려준 은행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신탁사는 손실 규모를 키우고 있다. KB부동산신탁은 올해 2분기 5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최철수 KB금융그룹 최고리스크관리자(부사장)는 전날 실적 발표에서 "부동산 PF 관련 충당금은 부동산 신탁 쪽이 올해 2분기 많이 늘었다"며 "2분기에만 약 800억원의 충당금이 인식됐다"고 말했다.

또 "2분기에 책준형 상품 사업장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모든 사업장 하나하나를 재점검했다"며 "이에 따라 굉장히 보수적인 예상 순위를 산출하고 충당금을 적립했다"고 설명했다.

KB부동산신탁뿐 아니라 신한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 대형 신탁사들 모두 1분기 적자를 냈다. 업계에서는 책준과 부동산 PF 관련 충당금 인식이 본격화된 2분기 실적은 1분기보다 더 나빠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이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속도를 내면서 신탁사 실적 전망은 더 흐려졌다. 사업장 정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모두 신탁사가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14개 부동산신탁사에서 책준 사업장에 발행한 부동산 PF 잔액만 24조원을 넘는다. 지난해부터 책준 관련 소송도 늘어나고 있어 관련 손실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KB와 신한 등 금융지주 산하 신탁사들조차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신탁사 관계자는 "KB부동산신탁은 '책임준공'이란 말을 만들어낸 곳이고, 다른 지주계열 신탁사도 인지도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부동산 활황기 '묻지마 수주'에 가깝게 사업장을 불렸다"며 "부동산과 자본시장 상황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이런 사업장들이 조단위의 손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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