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정책 충실히 분석…2030 등 당사자 목소리 더 담아야”

이종규 기자 2024. 7. 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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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저출생 보도’ 집중점검

정당별 총선 공약 분석 등
다각적인 접근 돋보였지만
대부분 정부 통계기반 작성
MZ·돌봄·노동계 목소리 다뤄야
아이 낳기 힘든 사회구조적 문제
분석 넘어 공론장 만드는 역할을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저출생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역대 정부가 지금껏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범국가적 총력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해부터 인구·복지팀을 꾸려 저출생 실태와 원인, 해법 등을 다각적으로 보도해왔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12기 열린편집위원회 두번째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저출생 관련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권오성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김지현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손종욱 아주대 학생(전 학보사 편집장), 송지현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진선미 언론인권센터 이사(노무사), 한겨레 주주·독자 온라인 커뮤니티 ‘한겨레:온’의 형광석 편집위원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전정윤 뉴스룸국 인사교육부국장, 이정훈 사회정책부장이 참석했다.

제정임 오늘은 한겨레의 저출생 관련 보도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보자.

손종욱 주변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저출생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점, 정당별 총선 공약 분석과 같은 저출생 정책 관련 기사들에 대해서는 좋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가 정부 부처에서 내놓은 통계 기반이다, 정책 수혜자인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20~30대를 인터뷰하거나 관련 기관을 찾아가서 입체적으로 접근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해외 사례의 경우, 너무 일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는 평가도 있었다.

권오성 저출생과 관련해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들이 있는데, 먼저 기후 관점에서 저출생이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간도 지구 생명체 중 하나인데,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게 과연 지상 명령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 볼 필요는 없는가, 우리가 직면한 다면적인 위기 상황에서 저출생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라도 문제가 뭔지에 대해 한번 짚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선미 저출생과 관련해 미디어의 역할은 사회적 공감대를 넘어 위기의식을 갖도록 하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겨레에 그런 심층 보도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저출생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 사례를 참고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오히려 주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래서 미디어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겨레가 해줬으면 한다. 인구학자 등 전문가와 독자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공론화를 하면 좀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형광석 저는 개인적으로 저출생은 ‘아이가 안 생기는 문제’, 저출산은 ‘아이를 안 낳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출생은 기후, 먹거리, 열악한 노동 환경 등으로 인해 아이가 생길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 파괴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는 아이를 낳고 싶은데 안 생겨서 못 낳는, 그러니까 난임이나 불임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많다. 저출산은 아이를 낳고 싶은데 임신·출산·양육·교육과 같은 사회적인 생태계가 안 좋아서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이다. 두 가지 다 해결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겨레에서 저출산과 관련된 사회적 생태계에 대해서는 많이 다뤘다. 기후위기, 직업병 등 아이가 안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두면 어떨까 싶다.

송지현 저출생 문제에 대한 프레임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출생이라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서 저출생을 바라보는 그런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저출생 문제는 긴 노동시간과 노동의 질 등 노동과 직결돼 있다. 저출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회구조적 문제, 특히 노동 문제에 저출생과 관련된 관점을 담아서 보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정부 주도로는 좋은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 여성, 노동, 돌봄 관련 시민단체 등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많이 담아 줬으면 한다.

김지현 한겨레가 저출생 관련 기사들을 많이 써주고 있는데, 대안 마련을 위한 공론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여성 노동자들이 출산을 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많은데, 그게 사회적인 공론장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의 경우, 공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을 빼고는 사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육아휴직을 하려면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미혼 출산이 2%밖에 안 된다고 알고 있다. 혼인을 해야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인식이 강하다. 비혼모를 위한 복지 수준이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보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제정임 한겨레가 다른 언론에 비해 저출생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뤄왔고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도 가장 정확하게 짚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걸 생생하게 독자에게 알려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미흡하지 않나 싶다. 지금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세대는 출산·육아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 말 그대로 바닥에서 퍼올린 기사들을 많이 실어줬으면 한다. 그리고 저출생 관련 여러 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50~60대 남성이 다수인 위원회에서 과연 현실적인 저출생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일 텐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게 없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의 저출생 대책이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다른 분들 추가적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달라.

손종욱 저출생을 해결하려면 사회구조적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최근 복지 인프라가 잘 갖춰진 북유럽 국가들조차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한데, 언론이 그런 내용은 다루지 않더라. 다른 측면도 좀 생각해보는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권오성 다른 위원들도 말씀하셨지만, 저출생은 노동,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축적된 결과 나타난 문제다. 그런 문제를 단기간에 풀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어떤 정부건 정해진 임기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윤석열 정부로 공을 넘기는 식으로 끝을 맺는 기사들이 많은데, 한 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정훈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갖고 보도를 해왔다. 현장성 부족을 많이 지적해 주셨는데, 향후 보도 과정에서 유념하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낸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 얼마 전에 초등학생이 교감 뺨을 때린 일이 있었는데, 모든 언론이 여과 없이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해당 학생 입장에선 굉장히 불평등한 지형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아동에 대해 보도를 할 때는 더욱 세심하게 다뤄줬으면 한다. 한겨레 기사에도 뺨 때리는 장면 사진이 포함돼 있는데 이제라도 사진은 좀 내리는 게 어떨까 싶다. (송지현 위원)

• 서울 시청역 사고와 관련해 한겨레에 운전자 나이와 사고율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65살 이상 운전자의 사고율과 사망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었다. 한겨레가 역으로 확증편향을 갖고 취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렇다고 면허를 제한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톤으로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손종욱 위원)

• 폭우에도 일하는 노동자에 주목한 기사는 의미가 있었다. 기후위기에 위협받는 사람들을 시리즈 형태로 좀 더 다뤄주면 좋겠다. (김지현 위원)

•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기사는 국내에선 흔치 않은 언론사 간 협업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런 시도가 다른 분야에서도 더 나왔으면 좋겠다. (권오성 위원)

• 토요판 ‘베이비부머의 은퇴’ 기사는 연금과 고령자 일자리 등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기사였다. 한겨레가 산재와 직업병에 대해 꾸준히 보도를 해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형광석 위원)

•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들이 상속세 탓을 했는데, 한겨레는 그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칭찬해주고 싶다. (진선미 위원)

• 한겨레 누리집의 ‘이슈’ 페이지 첫 화면에 이슈가 5개밖에 안 보이는데, 각 이슈당 기사 수를 줄이더라도, 첫 화면에 노출되는 이슈 항목을 늘려서 중요한 이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제정임 위원장)
열린편집위원회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7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50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결박당한 인권, 정신병원’ 기획이었다.

1. ‘결박당한 인권, 정신병원’ 시리즈

사회부 고경태 기자

한줄평: “사각지대의 인권말살 실태를 조명한 한겨레다운 기획보도” “이런 일이 아직까지 일어난다는 게 참담”

2. 산재 판정에도 과로사 인정 않는 쿠팡 “골프쳐도 그정도 걸어”

사회정책부 김해정 기자

한줄평: “쿠팡의 잘못된 인식은 사법적 대응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 소비자들이 알아야 하고, 그런 만큼 언론의 역할 필요”

3. 5개 언론사 공동기획,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문화부 박강수 기자

한줄평: “매체 간 협력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례”

4. ‘아프면 쉴 권리’ 공약 뒷전으로 미룬 정부

사회정책부 손지민 김윤주 기자

한줄평: “노동의 가치를 경시하는 회사에 사회적 지탄을 가하는 기사”

5. 화장실 표시부터 달라…일본엔 치매노인 위한 도시 있다

국제부 김소연 기자

한줄평: “임박한 초고령화 시대, 치매와 공존하는 사회를 위한 현실적 대안을 보여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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