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으로 분절된 사회 [열린편집위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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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어린 딸의 대화다.
현대 문명의 편리 가운데 많은 것이 안과 밖의 구분을 요구한다.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안과 밖'을 걷어내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지 문제를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안과 밖으로 분절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연결은 우리가 개의치 않을 일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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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아내와 어린 딸의 대화다.
“엄마, 에어컨이 시원해요? 선풍기가 시원해요?”
“응, 에어컨이 시원하지∼”
“왜요?”
“에어컨은 집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주거든∼”
“그럼, 밖은 더워도 돼요?”
현대 문명의 편리 가운데 많은 것이 안과 밖의 구분을 요구한다. 열을 밖으로 빼듯, 똥은 물을 내리면 어딘가로 사라지고,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으면 작별이다. 반대로 밖의 어디선가 오는 안락도 있다. 벽에 플러그를 꽂으면 전기가 돈다. 마트에 가면 각종 먹거리를 손쉽게 집을 수 있다. 주유기 노즐에선 휘발유가 꿀렁꿀렁 나온다.
이런 편리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과학과 기술 발명의 역할이 컸다. 악취와 전염병의 원인인 오폐수 처리는 영국의 토목기사 조지프 배절제트가 1875년 만든 하수 시스템의 덕을 봤다. 토머스 에디슨은 1882년 세계 첫 발전소의 스위치를 올렸고, 이후 전력망은 문명 사이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에드윈 드레이크가 최초의 석유 시추를 성공한 해는 1859년이었고,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정유업을 정립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석유 경제에 의존한다.
한편, 이런 재화와 서비스를 누리는 현대인조차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선 경제학자들의 발명품이라고 볼 소지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 어떤 지적 영향으로부터 해방됐다고 확신하는 실무가들도 오래전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라고 했다. 에어컨을 구매하는 합리적 소비자, 이기적 개인이란 개념 역시 처음에는 어떤 학자의 가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들이 너무도 삶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런 세계가 잘못 돌아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에서 내보낸 열기, 똥, 쓰레기는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안과 밖’을 걷어내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지 문제를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때 묻지 않은 딸이 알고 있듯 말이다. 우린 모두 뜨거운 지구 ‘안’에 함께 살고 있다.
지난 24일 한겨레의 ‘리튬전지 공장 참사 한달 일용직으로 공장일 해보니’란 기사를 읽었다. 23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이후에도 안전교육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는지 일용직으로 잠입 취재해 고발한 기사다. 기사는 이날의 남은 기억으로 동료 이주노동자를 묘사하며 끝을 맺는다. 몰래 휴대폰 보는 방법을 알려준 동생, 무거운 상자를 대신 올려준 남성 동료….
‘아리셀’ 홈페이지를 보면 이 공장에서 만든 리튬전지는 군용 무선통신 기기와 석유·가스 드릴 공정의 기기에 쓰인다고 한다. 그 전지는 현대의 복잡한 생산과 소비의 연결망을 타고 들어가 그 부분이 되었을 것이고 그 흐름에서 어느 순간 휘발유란 가공된 재화의 형태로 나 역시 연결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안과 밖으로 분절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연결은 우리가 개의치 않을 일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반면 낯선 이에게 손을 내민 이주노동자의 연결은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연결에 대해 되새기게 해 여운이 깊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작업은 적어도 그 어떤 학자의 작업과 같은 정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저널리스트는 학자와 전혀 다른 집필의 조건 아래에서 지시에 따라 즉시 기사를 작성해야 하며 또한 이렇게 작성된 기사는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 커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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