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강제노동' 명시 안 돼… 일본에 졌다"

권영은 2024. 7. 2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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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이 '강제동원' 문구가 빠진 채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학계와 시민사회 비판이 거세다.

앞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용인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규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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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강제성 빠진 합의' 부정적
"군함도 때 약속 안 지킨 일본과 또 합의라니"
"더 이상 역사 왜곡 없도록 지속적 관심 가져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 출구 모습. 사도=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이 '강제동원' 문구가 빠진 채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학계와 시민사회 비판이 거세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한국 정부가 용인했다'는 비난부터 '일본에 졌다'는 냉정한 평가까지 나온다.

전영욱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기조인 '한국이 선제 조치를 취하면 일본이 그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한다'는 프로세스가 이번에도 반복됐다"며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라면 일본이 강제동원 사실을 얼마나 부각하느냐일 텐데 회의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일본 측 발언과 보도자료, 현지 전시 문구를 보면 강제동원 언급은커녕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표현한다"며 "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강제성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또한 조선인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일본 측 전시물에 대해서도 "최신 안내시설인 '키라리움 사도'가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 하는 사도광산에서 2㎞나 떨어진 낡고 좁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한 구획에 설치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일본 니카타현의 사도광산에서 2㎞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이 28일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동원 관련 전시 시설을 새롭게 설치하고 개장을 준비하는 모습. 사도=류호 특파원

앞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용인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규탄한 바 있다.

산업유산 전문가인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역시 "일본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졌다"고 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 교수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서 자격(탁월한 보편적 가치, 완전성, 진정성)을 갖추지 못한 지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논쟁하지 못하고 강제동원에만 집중하다 보니 결국 일본의 뜻대로 된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 정부에 강제동원 관련 설득력 있는 근거만 만들어 주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하에 전시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했을 테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목적을 이룬 일본은 이제 버티면 된다"고 했다.

2015년 군함도 등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때도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노역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이행하지 않았다.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미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태에서 또 다른 합의가 얼마만큼 이행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며 "이 수준에서 합의할 거였으면 그동안 학술 조사 등은 왜 했나 생각이 들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결과를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정부와 학계, 언론 등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촉구가 잇따랐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은 "이번 등재로 끝났다 박수 치고 돌아보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이 없도록 본격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강 교수는 "일본이 강제노역 관련 자료를 내놓지 않아 연구가 너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전시물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연구자들이 역사의 기록을 지속적으로 남길 수 있도록 일본 측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 연구위원은 "(현재 사도광산을 관광지로 운영하는 주식회사) 골든사도가 소장하다 니가타현으로 넘긴 조선인 노동자 명부 원본이 있는데 이게 공개되는 등 일본 측의 후속조치가 있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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