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후 곰장어·복어 외식하던 ‘가족탕 전성기’ 다시 올까

글= 김태훈 PD 2024. 7. 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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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엘레지 <5> 추억의 ‘가족탕’ 아시나요?


- 방에 소형 온천탕 갖춘 가족탕
- 근대 일본식 여관서 유래 추정
- 80년대까지 동래 온천장 성업
- 지역관광 위축에 쇠락했지만
- 코로나로 뜻밖의 ‘특수’ 부활
- 온천·상권 활성화 계기 기대

‘가족탕’. 30대를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추억의 장소다.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에겐 다소 낯선 문화다. 숙소 안에 온천탕을 갖춘 구조를 일컫는다. 일반적인 욕조와는 조금 다르다. 성인이 앉아도 가슴이 잠길만 한 깊이에, 두 명이 다리를 쭉 펴고 누워도 넉넉할 정도의 크기다. 온천욕에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할 필요도 없다. 욕실 문만 넘으면 바로 침대에 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방을 잡고 하루종일 가족탕을 즐기는 고객은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2시간 내외로 대실도 한다. 가족탕을 보유한 온천업체 다수가 자취를 감춘 오늘날이지만, 부산의 온천지에선 여전히 가족탕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식혀버린 가족탕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독립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목욕을 즐긴다는 점이 새삼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동래구 ‘녹천호텔(옛 녹천탕·1980년 신축)’은 2018년 들어 시설을 현대식으로 재단장했다. 한동안 큰 변화가 없던 방문객 수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며 급변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가족탕 이용객이 늘어난 것이다. 녹천호텔 관계자는 “펜데믹 시기 가족탕 고객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22년에는 재개장 이후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동래구 온천장. 국제신문DB


▮곰장어와 복어

국내에 가족탕이 등장한 계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동래구 온천장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00년대 초반 일본인들이 들여온 일본식 여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견줘 오랜 온천문화 역사를 지닌 일본에서는 일찍이 다양한 형태의 목욕시설이 개발됐다. 여러 명이 모여 온천을 즐기는 ‘대욕장’ 외에도, 숙소 안에서 개인적으로 온천을 즐기는 시설이 ‘전세탕’ 혹은 ‘가족탕’ 등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흔히 큐슈 구마모토현의 야마가가 그 발상지로 여겨지나, 일본 역시 가족탕의 출현에 관한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일본식 여관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건 1898년이다. 그 해 조선과 일본 간 동래온천 임차계약이 체결됐다. 이후 동래는 삽시간에 전국적인 온천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인기 관광지에는 언제나 유흥문화가 따라붙기 마련. 남녀가 함께 탕에 들어가는 식의 음지 영업도 없지 않았다.

광복 이후 일본인이 물러나자 비로소 가족탕은 진정한 가족 관광 문화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숙박과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각광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조용히 목욕을 즐기러 들른 동네 주민부터 온 가족이 다함께 몸을 담그기 위해 부산을 찾은 가족 여행객, 타지에서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 등의 발길이 동래온천으로 향했다.

동래구 온천장 ‘녹천호텔(옛 녹천탕·1980년 신축)’ 가족탕. 김태훈 PD


덩달아 온천장 곰장어 골목은 가족탕 이용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최효자 동래지부장은 “1970 ~1980년대는 온천장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며 “대중탕은 물론 숙박이 가능한 가족탕을 이용하려는 고객도 상당수였다. 가족 단위 고객이 온천장을 방문해 유발되는 소비가 상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온천장에서 ‘부산토박이산곰장어’를 운영하고 있는 문상학 대표도 “숙박을 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관광버스까지 타고 온천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당시에는 평일 밤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식당과 유흥가에도 돈이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동래에 곰장어가 있었다면 해운대에는 복어가 있었다. 해운대 일대에는 1970년 문을 연 ‘금수복국’을 비롯해 여러 복국 전문점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해운대에도 가족탕을 갖춘 업소가 즐비했다. 가족이 한데 모여 해운대온천에서 한바탕 목욕을 즐긴 뒤에는 시원한 복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다.

금수복국 2대 사장 유상용(62) 전 대표는 “목욕바구니를 든 채 식당을 찾아오던 손님들의 모습이 기억난다”며 “가족끼리 목욕을 한 뒤 복국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연례 행사였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구남로번영회 장영국(53) 회장 역시 “1970~1980년대에는 동래온천 뿐만 아니라 해운대온천에도 가족탕이 유행했었다”며 “온천욕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가족 단위 고객들로 인근 식당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세월에 식어버린 열기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동래구 온천장 ‘금천파크온천(옛 금천탕·2004년 재개장)’ 가족탕. 박혜원 PD


승승장구하던 온천장 상권은 2000년대에 접어들며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금강공원의 시설이 노후화하고 동물원마저 문을 닫자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인기 관광지의 높은 물가는 서면·명륜·부산대 상권의 부상과 맞물리며 젊은층 고객의 이탈을 불러왔다. 그나마 동래온천을 찾아온 가족 손님들도 온천만 즐긴 뒤 숙박은 다른 지역에서 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1967년 문을 연 만수온천 2대 사장 이기희(62·한국온천협회 동래지회장)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 온천장에 오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온천 말고는 할 게 없다’고 한다. 대부분 온천만 이용한 뒤 옆 동네인 명륜·연산동, 부산대 대학로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온천장 상권의 쇠퇴는 도소매·음식점 수 추이가 말해준다. 부산시 사업체 자료조사에 따르면 동래온천이 자리한 온천1동은 2007년 ▷도소매 업체 765곳 ▷숙박 및 음식점 771곳에 달했다. 그러다 2022년 ▷도소매 업체 715곳 ▷숙박 및 음식점 622곳으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옆 동네인 명륜동은 2007년 ▷도소매 업체 400곳 ▷숙박 및 음식점 451곳에서 2022년 ▷도소매 업체 535곳 ▷음식점 645곳으로 증가했다. 이를 두고 최 지부장은 “주요 관광지였던 금강공원이 노후화된 이후, 재정비가 지지부진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며 “현재는 인접 부지가 대부분 거주지로 재개발되며 관광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 관광지로 자리잡은 해운대는 상권 침체로 인한 어려움이 동래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해운대온천이 있는 중1동은 2007년 ▷도소매 업체 743곳 ▷숙박 및 음식점 537곳에서 2022년 ▷도소매 업체 906곳 ▷숙박 및 음식점 760곳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뜨겁던 온천의 열기는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행정안전부 2023 전국 온천 현황’에 따르면 해운대 온천원 보호지구에서 해운대온천을 활용하는 업소는 10곳에 불과하다. 이는 2001년 27곳에서 60% 이상 급감한 수치다. 해운대구의 한 온천업체는 “해운대온천수는 염분 함량이 많아 배관 등 시설의 노후화가 빠르다”며 “영업이 잘 되던 시절에도 시설 관리에 애를 먹는 업소가 많았다. 이용객마저 줄어들자 많은 온천업소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다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추억 속 가족탕의 재발견

해운대구 ‘해운대온천센터’ 전경. 김태훈 PD


이대로 자취를 감추나 싶던 가족탕은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뜻밖의 특수를 맞았다. 팬데믹 시기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며 마땅한 여행지를 찾는 것이 어려워지자, 여름휴가지로 가족탕이 주목받은 것이다.

만수온천은 팬데믹으로 인해 대중탕 영업을 중지했는데도 가족탕 매출에 힘입어 위기를 넘겼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당시에 오히려 가족탕의 장점이 부각돼 평소보다 많은 고객이 찾아왔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래구 금천파크온천(옛 금천탕·2004년 재개장) 김성국(60·한국온천협회장) 대표 역시 “팬데믹 기간 동안 손님이 끊겨 7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버틴 것은 가족탕이 매출을 견인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뒤에도 가족탕을 향한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김 대표는 “이용 고객의 3분의 1 이상이 가족탕 고객일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앞으로 동래온천 가족탕의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금수복국 유 전 대표는 “숙박을 하면서 해운대온천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개발된다면 관광객이 해운대에 머무르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구남로번영회장 역시 “온천 워터파크인 ‘클럽디오아시스’가 문을 연 뒤 구남로 상권에 젊은 세대의 유입이 늘었다”며 “젊은 세대가 매력을 느낄 만한 모습으로 가족탕이 부활한다면 온천과 인근상권이 함께 살아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박혜원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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