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펜싱'에 변칙작전 더해 金 …'괴물 검객' 오상욱 승부수 통했다
펜싱 첫 '그랜드슬램' 달성
단순했던 공격 패턴에서
빈틈 기다리며 기회 노려
50일전 스타일 변화 적중
한발 빠른 공격은 필살기
192㎝ 키에 탁월한 피지컬
'완벽 다리찢기' 외신도 감탄
"한국선수단 첫 金 영광
단체전도 정상 오를 것"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경쟁자들이 철저하게 분석한 뒤 약점을 파고들어서다.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정상에 오른 오상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대 선수들의 견제를 이겨내기 위해 10년간 해온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진화를 거듭한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정상에 오르는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대회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대11로 제압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생애 처음 출전한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개인전 8강 탈락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던 오상욱은 이번 대회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32강전 에반 지로(니제르)를 시작으로 알리 파크다만(이란), 파레스 아르파(캐나다), 루이지 사멜레(이탈리아)를 차례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금메달을 놓고 맞붙은 상대는 페르자니였다. 오상욱은 경기 초반부터 점수를 챙기며 14대5를 만들었다. 승리를 눈앞에 둔 듯했지만 오상욱이 페르자니에게 연달아 6점을 내주며 점수 차는 3점까지 줄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필요했던 점수는 단 1점. 더 이상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 오상욱은 15점을 완성하는 공격에 성공해 금메달을 확정했다.
오상욱은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이겨낸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더 격렬하게 훈련한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첫 번째 한국 선수가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결과는 금메달이었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오상욱은 지난 5월 서울 SK텔레콤 국제 그랑프리 선수권대회와 마드리드 사브르 월드컵에서 8강 이전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올해 초 손목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오상욱이 부진에 빠진 원인은 낱낱이 분석당한 경기 스타일에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공격과 수비를 하는지에 대해 노출돼 있는 만큼 오상욱은 이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자신감까지 떨어지면서 그는 상대 선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며 한 박자 빠르게 공격하는 장점까지 잃어갔다.
오랜 고민 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오상욱은 파리올림픽을 50여 일 앞두고 10년 넘게 고수했던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최신 펜싱 트렌드에 맞춰 변화를 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매일경제와 인터뷰했던 오상욱은 "하던 대로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오상욱의 과감한 변화는 지난달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리올림픽에서는 세계 최고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면서 확실한 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스타일까지 장착한 그는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 개인전까지 제패하는 남자 사브르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오상욱은 "단순했던 공격 패턴을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상대 선수들이 수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몸으로 하는 가위바위보인 펜싱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50여 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오상욱이 새로운 스타일을 장착한 원동력은 피나는 노력에 있다. 펜싱 선수로 활약했던 친형 오상민 씨와 원우영 남자 사브르 대표팀 코치 등에게 지도를 받은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스텝과 찌르기 등을 연습한 끝에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10년간 오상욱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한 발 빠른 공격을 버린 건 아니다. 반드시 점수를 따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필살기는 이전과 동일했다. 지난해 2관왕을 차지했던 항저우아시안게임 때처럼 다른 선수들보다 한 발 빠르게 먼저 움직이는 '발 펜싱'으로 이번 대회 금메달을 확정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도 다리를 양옆으로 크게 찢은 오상욱의 사진을 게시하는 등 발 펜싱에 주목했다.
오상민 씨는 "192㎝의 큰 키에 빠른 발, 남다른 힘을 갖고 있는 오상욱이 마음먹고 공격하면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잘하고 있는 것을 바꾸기보다는 발전시켜야 한다고 판단해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훈련했다"며 "베테랑 선수들이 한 번쯤은 겪는 전력 노출에 대한 문제를 이겨낸 만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오상욱은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지도자들과 가족 등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 오상욱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원 코치님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잡아주셨다. '널 이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내게 큰 힘이 됐다"며 "'네가 마음먹고 공격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으니 자신 있게 공격하라'는 형의 응원도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경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인전을 기분 좋게 마무리한 오상욱의 눈은 단체전으로 향하고 있다. 오는 8월 1일 결승전이 치러지는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오상욱은 구본길, 박상원, 도경동과 한 팀을 이뤄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한국 남자 펜싱이 단체전 정상에 오르면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또 오상욱은 한국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2관왕을 달성하게 된다.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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