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11번 신고해도 경찰이 풀어줘”…제2의 쯔양 막으려면 [범죄열전]
반의사불벌죄라 적절한 공권력 개입 어려워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거제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일명 ‘거제 교제폭력 상해치사 사건’ 피해자 모친의 말이다. 지난 4월1일 경남 거제시에서 20대 A씨는 주거지에서 전 남자친구 B씨에게 폭행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유가족은 수차례 경찰 신고에도 딸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법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영석)은 20대 B씨를 상해치사 등 혐의로 심리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B씨 변호인은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을 인정하고 사망에도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상해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B씨는 A씨가 전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적절한 공권력 개입이 이뤄지지 못한 까닭으로 반의사불벌이 꼽힌다. 교제폭력은 폭행 등 반의사불벌이 적용되는 법률에 따라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는데, 교제폭력 특성상 피해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파트너에 대한 처벌을 구하기는 어렵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피해자에게 달려 있어 사건 접수부터 쉽지 않은 셈이다.
실제 경찰청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7만7150건이었지만 검거는 1만3939건(약 18.1%)에 그쳤다. 지난 10일 국회 입법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이 통계를 두고 “처벌불원이 원인일 수 있다”며 “피해자를 취약하게 할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 위험 신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가정폭력 피해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가 간섭과 규제, 가족 및 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기 등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허 연구관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이해한다면 폭력 피해자 중 소수만 보호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가정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전부개정법률안 각각 1건이 계류 중이다. 두 법률안 모두 피해자 범위를 가족 외 친밀한 관계로 넓히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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