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지옥’ 베네수엘라···‘권모술수’ 마두로 살아남을까

윤기은 기자 2024. 7.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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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선은 이달 28일 치러질 예정이다. AFP연합뉴스

초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가 28일(현지시간) 6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실시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62)이 3선에 도전한 상황에서 야권연합 후보가 이를 저지하고 2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선에 출마한 10명의 후보 중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는 좌파 민족주의 성향인 여당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마두로 대통령(62)과 중도 우파 ‘민주 야권 연합’(PUD)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75) 등 두 명이다.

현지 여론조사업체 ORC가 지난 5일부터 9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의 지지율은 59.6%로 마두로 대통령(12.5%)보다 네 배 이상 높았다. 여론조사대로 대선 결과가 나오면, PSUV는 25년 만에 야당에 자리를 내어줄 전망이다.

시민 대다수가 극빈층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내년 1월10일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경제·외교 정책의 향방이 주목된다.

공공·민간 균형 ‘중도 경제’ 지향하는 곤살레스 우루티아
2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노점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2018년 물가 6만% 상승, 10년간 700만명 이민. 마두로 정부의 11년 성적표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 부국이었지만, ‘자원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 한 번, 2010년대에 또 한 번 유가가 폭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1년간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마두로 정부는 시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자 화폐를 과도하게 찍어냈다. 이는 초인플레이션(물가오름세) 현상으로 이어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군부를 동원해 식료품·생필품 가격 통제 정책을 벌였지만, 노동자 임금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3선에 도전하는 마두로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좌파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우고 차베스 전 정부의 경제 기조인 ‘차비스모(차베스주의)’를 기반으로 미국의 제재 극복, 주변국 좌파 정권과의 연대 강화 등을 공약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자국의 경제 붕괴를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린 사이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권위주의 통치’로부터의 도피가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현 정권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펼친 경제 정책이 나라를 망친 상황을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기업 상당수가 국유화되어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민간기업의 사업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보지만, 공공사업도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6일 보도된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초자유주의적 사유화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국가도 참여하는 균형 잡힌 프로젝트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영 석유회사 PDVSA를 민영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사회기반시설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공공·민간 투자 동시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유 재산권 보호 강화 등 계획을 세웠다.

‘반미’ 누그러질까···뚜렷한 방향 제시 않는 외교관 출신 곤살레스 우루티아
지난 25일(현지시간) ‘민주 야권 연합’(PUD)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베네수엘라 대선 후보가 카라카스 유세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향후 대미 정책도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남미 최대 산유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줄곧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취해왔다.

마두로 정권은 반미 노선을 선명히 취해왔다. 중남미인에 대한 미국의 혐오, 대베네수엘라 제재, 내정 간섭 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반미 정서를 노린 것이다.

친미 국가들이 십수년간 베네수엘라에 등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외교관 출신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가 어떤 외교술을 보일지 주목된다. 그는 1971년부터 31년간 미국, 아르헨티나, 벨기에 등 국가의 대사관 주재원으로 일했다.

다만 그는 대미 노선에 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앞서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는데, 여기에 더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하면 “야권이 미국을 등에 업고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는 마두로 대통령의 ‘이미지 씌우기’ 전략에 휘말리게 된다.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가 집권하면 미국과의 경제 협력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미국의 투자를 유치해야 경제 활성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에 외교관으로 있던 1999년 차베스 정부에 남미 최대 경제협력기구인 메르코수르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권모술수’ 마두로의 불복 가능성
지난 2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민주 야권 연합’(PUD)을 이끄는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카라카스 대선 유세 현장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이 패할 경우, 그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지난 22일 유세 당시 “내가 지면 피바다를 만들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마두로 대통령은 입법부, 사법부,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장악하며 민주주의를 흔들었다. 2015년 야당 의원 당선 취소, 2018년 기습적인 조기 대선 실시 등을 주도했다. 이번 선거에서 사법부는 미국 제재를 지지한 혐의로 ‘베네수엘라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인기를 끈 PUD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대해 1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분석가 파올라 바우티스타 데 알레만은 마두로 대통령이 대선에서 지면 선관위가 결과를 바꾸거나, 마두로 대통령 본인이 사법부에 이의를 제기해 결과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결과든) 시민이 항의권을 행사하고, 국가가 억압적인 힘으로 대응하는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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