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내 마음을 비추는 창”…나만의 글꼴 만들어가는 전경호 서예가 [문화인]

이나경 기자 2024. 7. 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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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마음의 창과 같습니다. 글을 쓰는 이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담긴 다양한 글씨체가 존중 받기를 꿈꿉니다."

한글 서예의 대표 격이자 한글이 가진 멋을 가장 잘 드러내는 궁서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서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경호 서예가(67)는 "때로는 틀에서 벗어난, 판에 박히지 않은 새로움이 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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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순 수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경호 서예가(67)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한글 글자체의 디자인 특허 등록을 마치고 컴퓨터 글꼴(폰트)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이나경기자

 

“글씨는 마음의 창과 같습니다. 글을 쓰는 이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담긴 다양한 글씨체가 존중 받기를 꿈꿉니다.”

백성을 위해 창제된 한글에는 ‘격식’이라는 단어보다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한글에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글씨체는 그 정신이 담긴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 서예의 대표 격이자 한글이 가진 멋을 가장 잘 드러내는 궁서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서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경호 서예가(67)는 “때로는 틀에서 벗어난, 판에 박히지 않은 새로움이 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전 서예가는 올해까지 총 세 개의 한글 글자체 디자인 특허 등록을 마치고, 추가로 한 건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는 궁서체의 획과 구조에 관한 연구를 종합해 자신만의 글꼴을 만들고, 많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경호체’로 컴퓨터 한글 글꼴(폰트)화를 준비 중이다.

이처럼 전 서예가의 인생은 ‘글씨’와 뗄 수 없다. 학생 때부터 모나미 후리펫(붓펜)으로 글씨를 쓰던 그는 방학 내내 반 친구들의 연락처를 옮겨 써 학급 전화번호부를 손수 만들고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지금의 아내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바로 글씨다. 연애 시절 그의 편지가 보기에 너무 좋고 예뻐 당시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들은 그의 편지를 함께 기다렸다가 구경했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 후 수원에 정착한 그는 운수업으로 지역 내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MK 택시회사와 수원시의 만남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그곳의 선진화 시스템을 지역 내 소개하고 수원 택시회사의 일본 견학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교류 시스템의 물꼬를 텄다. 이후 그는 재활용 업계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지만, 그도 모르는 새 몸은 곪아가고 있었다. 위암이 발병한 것이다.

전 서예가는 인터뷰 현장에서 즉석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누군가에게 서체를 전할 때마다 색색의 천을 직접 준비한다는 그는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 장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나경기자

그때 전 씨는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서예를 다시 찾았다. 그는 “수술 후 몸이 아프다 보니 자연스레 서예에 집중할 시간을 갖게 됐다”며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인생 2막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몸은 점차 호전됐고, 그는 서울의 한 전문 교육원에서 6년간 정식으로 고체, 정자, 흘림 등 한글 서예 훈련을 받았다. 30년간 매일 정성 들여 쓰던 경전은 그도 모르는 새 자신을 훈련했고 여기에 전문교육은 정점을 더했다.

하지만 점차 그는 획일적인 교육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예를 들어 선생님들은 ‘기역(ㄱ)’을 ‘낫’처럼 쓰라고 하시는데, 저의 글씨체는 기역을 위로 올려서 꺾여 쓰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볼 때 기준을 벗어난 제 글은 어설프고 아마추어 같겠지만, 저도 그렇고 주변의 사람들은 제 글씨가 보기에 좋다고 말했습니다”라고 했다.

한글은 누구나 잘 아는 글자이기에 한문 서예에 비해 기존의 서체와 쉽게 비교당하고 평가절하되기 쉽다. 전 서예가는 자신의 서체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와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 전 씨는 “국전이나 초대작가의 길을 가기에는 문화상 쉽지 않았다”며 디자인 특허 등록의 길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몇 년 전 캘리그라피가 유행한 것도 자유롭고 개성 강한 각자만의 글씨를 쓰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다”며 “자신 있게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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