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불시착한 고대 석상 시간 혼돈 그린 상상의 고고학

美작가 다니엘 아샴 개인전
10월 13일까지 롯데뮤지엄

'Athena Helmeted Found in Bukhansan 3024'. 롯데뮤지엄

3024년 북한산에 아테네 여신상이 불시착했다. 달빛으로 물든 북한산에 거대한 석상이 숨어 있다.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44)이 한국 전시를 위해 그린 2점의 신작 중 하나다. 압도적인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외감과 구도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회화 양식을 차용했다. 1000년 뒤 북한산에서 서양 고대 유물을 발견한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그림 속에 펼쳐보인다.

그는 "100년 전보다 오늘의 세계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일종의 상징을 만들어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싶었다. 의도를 파악하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SF 소설가처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현한 '아샴 유니버스'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찾아온다. 롯데뮤지엄은 이달 12일부터 10월 13일까지 '다니엘 아샴: 서울 3024' 전시를 연다. 250여 점의 작업을 통해 3024년을 소환한 다니엘 아샴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아샴은 파리, 런던,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상상의 고고학(fictional archaeology)'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조각, 회화, 건축,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는 작가다. 티파니, 디올, 포르쉐, 리모와 등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작가는 "이스터섬을 여행했을 때 '상상의 고고학'을 통해 미래에서 만날 유물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16년 파리의 한 박물관 창고에서는 고대 석상의 주형을 틀로 떠내는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일종의 시간적 혼돈 효과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세계관 속 공존하는 여러 시대와 문화, 장르를 넘나든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해석한 고대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부터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아이콘 포켓몬, '미래 유물(Future Relic)' 오브제 시리즈, 세계적 브랜드와 가구, 패션, 건축과의 협업으로 시각예술 영역의 확장을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업은 '발굴 현장'이다. 폐허가 된 서울의 지하를 구현한 거대한 공간에는 유물이 된 카메라, 컴퓨터, 기타, 턴테이블 등 부식된 석고 오브제가 가득하다. 이곳을 거니는 관람객은 고고학자가 되어 익숙한 유물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이것은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직접 종이 한 장을 들고 거기에 드로잉을 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색맹이라는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도 그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초기작은 색이 배제된 게 많았다"며 "지금은 시력 교정 렌즈의 도움을 받아 많은 색감을 볼 수 있고, 색상마다 12개의 숫자를 붙여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