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공직 할당’ 반대 시위 재개하나…‘강경 진압’ 후폭풍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듯했던 방글라데시 대학생 시위에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강경 진압 실태가 계속해서 드러나며, 학생 단체는 시위대 석방과 강경 진압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경고했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학생 조직 ‘차별반대학생모임’은 이날 “학생 지도자들이 구금에서 풀려나지 않으면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압둘 한난 마수드는 “이들은 석방돼야 하며 이들에 대한 기소 또한 철회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이달 초 방글라데시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 공직 할당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가 1971년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를 대상으로 정부 일자리의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 정부 부패에 지친 청년층이 들고 일어났다.
지난 24일 정부가 독립 유공자 자녀 할당 비율을 5%로 축소하는 대법원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시위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듯했으나, 당국의 탄압은 이어졌다. 지난 26일엔 고문과 구타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 중이던 시위 지도자 3인을 사복 경찰이 강제로 퇴원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병원 측 설명에 따르면, 의료진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들을 퇴원시키라고 압박했다. 정부는 이들의 강제 퇴원이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학생들이 다시 시위를 예고한 것이다. 압둘 한난 마수드는 “(시위대 사망에 책임이 있는 장관과 경찰관에는) 눈에 띄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29일부터 강력한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며 200명 이상이 숨지고 4000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 정부 발표가 없는 만큼 집계치 간 차이가 커, 방글라데시 일간 프로톰알로는 전국에서 9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진압 실상이 알려지며 정부가 과도하게 무력을 사용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진압에 희생된 이들의 정보를 모으는 웹사이트가 등장해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사연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현재 102명의 소개를 보면, 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취재하던 기자, 인근 상점 직원, 시위 주변을 지나던 운전자, 부상당한 시위대를 돕던 행인 등도 눈에 띈다. 시위가 일어났을 때 집 옥상에서 놀다 총을 맞아 사망한 2018년생 여아도 포함돼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수도 다카의 한 병원에서만 250명 이상이 산탄총알이나 고무탄을 얼굴에 맞아 눈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보도했다.
희생자의 유가족과 친구들이 시신을 되찾기 위해 경찰과 싸워야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NYT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각조각 모으고, 전화가 끊기고 통금으로 이동이 제한된 틈틈이 시신을 수색하고, 정부가 증거를 은폐하려는 와중에 마지막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한 유가족은 “우리가 다시 웃을 수 있을지, 그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진정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NYT에 밝혔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하시나 총리는 2009년부터 집권하고 있으며 지난 1월 총선에서 4연임을 거둬 철권통치를 굳혔다. 그는 이번 시위를 “야당의 음모”로 규정했으며, 인터넷을 차단하고 전화를 끊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또한 전국에 통금령을 내려 군이 순찰에 나섰다.
이번 시위의 성격이 점차 권위주의 통치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망명 중인 방글라데시 정치 분석가 무바샤르 하산은 “하시나 정부의 주요 특징은 반대 의견에 대한 폭력적 탄압”이라며 “이번 시위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 갈등의 신호”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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