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단상] 가상자산 시장, 건강한 생태계 조성과 이용자보호
생태계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그들의 물리적 환경이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공동체를 뜻한다.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각 구성 요소는 전체 시스템의 균형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작용함으로써 안정성을 발휘하고 생태계 구현이라는 선순환 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 구성 요소의 다양성, 균형,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각 산업 요소에 필수적인 구성원이 존재함으로써 산업의 경쟁력, 유지 운영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가상자산도 하나의 업종으로써 올바른 생태계 구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금융위에서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645만명에 달한다. 주식투자 인구의 50%를 넘는 수준으로 가상자산이 점차 주류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자자산의 규모를 나타내는 시가총액은 약 43.6조원으로 국내 주식 시장에서 시총 8위권에 해당된다. 하지만 금융위에 등록된 사업자의 대다수가 거래소들이며 시총의 대부분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수치자료를 비교해봐도 이미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거래소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거래소뿐 아니라 수탁, 운용, 일임, 결제, 지수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모델이 존재한다. 거래소 외에도 이미 유니콘, 데카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수두룩하다. 그들만이 가진 특장점, 특색 등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 있어서 시장에 필요한 역할들을 공급하고 있다. 다양성 확보로 인해 상호 견제, 조화, 균형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올해 1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ETF를 승인했다. 산업계는 SEC 심사에서 나온 변경 요청사항을 하루 만에 조치하고 다음 날 바로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이처럼 속도감 있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계의 간절함이 가장 크겠지만, 그만큼 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시장은 이미 금융당국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즉시 수용해 반영할 만큼 체계적인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금융위원회가 오늘 당장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과연 하루 만에 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다양한 유형의 사업자가 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산업 자체가 지나치게 거래소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모든 기능을 담당하다 보니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또 거래소가 그동안 차지하지 못했던 업무분야는 빈 공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제대로 된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미국 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할 당시, 기본 전제는 기존 전통금융과 가상자산 분야를 구분한 것이다. 아직 금융당국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비트코인의 불확실성이나 잠재된 리스크가 혹시 주류 금융시장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트코인 현물 ETF 구조는 기존 ETF 상품과 동일하다. 금, 은, 구리 등 실물자산을 기초로 한 ETF는 이미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벤치마킹해 상품 설계가 가능하다. 다만, 비트코인 현물 ETF는 동질, 동종, 동량의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수탁, 매매, 중개, 유동성 공급, 시장조성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특화된 업무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양성 결여가 한국형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홍콩, 영국 등 금융 선진국들도 앞다퉈 가상자산을 금융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있다. 금세 사라져 버릴 산업이 아니라면 굳이 제도권화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 금융시장을 이끄는 선두 국가들조차도 가상자산 시장 선점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상자산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구현하려면 다양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거대한 시장에서 절대로 소수의 사업자가 전체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독과점은 자본주의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보다 두터운 이용자보호를 위해서라도 산업 다양성 확대는 하루라도 빨리 논의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kevin@inb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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