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음악 영역 확장하는 클래식 편곡

2024. 7. 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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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문세의 '붉은 노을'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애청곡이다. 원곡도 좋지만 가끔 그룹 빅뱅이 노래한 편곡 버전을 들어도 신이 난다. 편곡 작품의 매력이 원곡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잘 변용한 음악은 누군가 혹은 다음 세대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며 생명을 이어 간다.

수백, 수십 년간 사랑받아 온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의 악보는 후대 음악가들의 편곡과 다양한 해석을 거치며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특정 악기를 위해 쓴 곡을 다른 악기가 연주할 수 있도록 재편성하는 경우는 꽤 많다. 독주 악기로서는 쓰임새가 한정적이었던 악기 연주자들은 다른 악기를 위해 쓴 작품을 자신의 악기에 맞게 편곡해 레퍼토리를 늘려 간다. 성악가를 위해 쓴 가곡을 피아노나 첼로가 연주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호르니스트 김홍박. 목프로덕션 제공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음악가였던 에마뉘엘 파위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플루티스트는 플루트의 위상을 최고로 끌어올린 연주자다. 그를 위해 새롭게 작곡된 플루트 작품도 많지만,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을 그가 플루트로 소화해 냄으로써 레퍼토리를 넓히고 관심도를 높였다. 파위의 총애를 받는 플루티스트 김유빈은 다음 달 리사이틀에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플루트 편곡 버전을 연주한다. 로베르트 슈만이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해 쓴 '3개의 로망스'는 오보에 대신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이 곡을 앨범에 담았다.


'패러프레이즈'와 ‘트랜스크립션' 350곡 남긴 리스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위키미디어 커먼스

음악의 본질은 유지하되 형태를 바꾸는 편곡은 음악 전반에 열린 개념을 갖고 있던 리스트의 장기였다. 그가 생존할 당시 오페라나 교향곡 같은 대규모 공연은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 리스트는 오페라의 주제를 독창적으로 변형하고 화려하게 표현한 '패러프레이즈'와 원곡의 내용 변화까지 감행하며 다른 악기를 위해 편곡한 '트랜스크립션'을 무려 350곡이나 남겼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를 피아노 곡으로 재탄생시킨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는 가장 유명하고, 자신이 후원하던 베를리오즈를 비롯해 슈베르트, 베토벤, 바그너의 가곡, 교향곡 등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널리 알렸다. 그의 이 같은 활동은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피아노의 음향과 기법을 실험함으로써 오케스트라 음향까지 재현할 수 있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널리 알렸다.

이러한 활동은 부조니, 고도프스키, 호로비츠를 비롯해 아믈랭, 사이, 볼로도스 등 현재 활동하는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페루초 부조니는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피아노로 편곡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바흐의 '샤콘느'는 부조니 편곡 버전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다. 9월에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은 고도프스키가 편곡한 쇼팽의 에튀드 전곡 연주로 2000년 그라모폰상을 받으며 작품의 가치를 알렸다. 초월적 피아노 연주와 작곡 실력을 겸비한 아르카디 볼로도스는 2000년 첫 내한 당시 자신의 편곡 작품으로 7개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그중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편곡은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중요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됐다. TV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손열음이 연주해 화제가 됐는데,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출연한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연주 영상도 자주 언급된다. 최근까지 임윤찬이 연주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프로그램 발표 당시에는 호로비츠 편곡으로 연주한다고 했는데, 연주 때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입히며 진화 중이다.


라벨,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출판

모리스 라벨. 위키미디어 커먼스

라벨은 피아노를 위해 쓴 꽤 많은 작품을 관현악 편곡을 만들어 출판했다. '고풍스러운 미뉴에트'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라 발스' '맘메르루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인 광시곡' 그리고 원곡과 편곡 사이의 형태 변화가 큰 '쿠프랭의 무덤' 등이 있다. 같은 악기 내에서 편곡할 경우에는 선율의 확장이나 화성의 변화를 활용하게 되지만, 악기가 달라지면 고유의 음향과 음색의 변화가 호불호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라벨의 작품들은 관현악이나 피아노 편곡 모두 각기 고유성을 유지하며 그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라벨은 피아노라는 악기도 잘 다뤘지만, 오케스트라의 악기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통한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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