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 입찰비리 경찰 수사 1년 막바지, 의혹 풀릴까…HD현대중 “유착 의혹 허위” 참고인 의견서
이르면 다음 주 왕 전 청장 소환 …8월 중 수사결과 발표
HD현대중 “경찰 조사 안받아 연관성 없어”…입건자 1명 방사청·HD현대중과 무관
2020년부터 불거졌던 방위사업청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입찰 비리 의혹 관련 경찰 수사가 막바지 수순에 접어들면서 수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KDDX 선도함 등 상세설계 사업자 선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과 HD현대중공업(HD현대중) 간 부정 청탁이 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입건된 인물은 왕 전 청장과 측근 1명 정도로 파악됐다. HD현대중은 왕 전 청장과 유착 관계라는 허위 사실 유포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취지의 참고인 의견서를 경찰에 냈다.
28일 경찰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왕 전 청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를 수사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이르면 다음 주 왕 전 청장을 소환 조사한 뒤 8월 중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왕 전 청장의 비위 관련 첩보를 입수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그를 입건하고 압수수색하는 등 1년 넘게 수사를 이어왔다.
왕 전 청장이 2020년 5월 KDDX 사업의 기본설계 입찰이 있기 전 HD현대중에 유리하도록 입찰 관련 ‘보안사고 감점 규정’을 삭제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방사청은 2019년 9월 무기체계제안서 평가업무지침을 개정해 보안 사고가 발생한 업체에 0.5∼1.5점을 감점하는 규정을 삭제했다.
기본설계 입찰 당시 KDDX 기밀 자료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HD현대중은 규정 변경으로 감점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0.056점의 근소한 차이로 경쟁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을 제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에서는 왕 전 청장이 HD현대중 측으로부터 청탁받아 입찰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HD현대중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며 왕 전 청장과 연관성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실제 현재까지 입건자는 왕 전 청장을 제외하고 1명뿐이며, 다른 1명은 방사청이나 HD현대중 관계자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감점 규정 변경으로 혜택을 본 HD현대중 측 인물이 수사 막바지까지 입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HD현중과 왕 전 청장 사이의 부적절한 공모는 확인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HD현중은 지난 26일 국수본에 ‘투명하고 신속한 수사로 자사와 관련한 허위 사실을 시정해 달라’는 내용의 참고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는 27쪽 분량이고 첨부한 증거자료까지 합하면 197쪽이다.
HD현대중은 의견서에서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는 자사와 왕 전 청장 간 유착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참고인과 관련한 허위 사실이 지속 유포되는 현재 상황은 신속하게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논란이 된 보안사고 감점 규정 개정은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무조정실의 권고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자사뿐만이 아니라 경쟁업체를 포함한 총 7곳이 규정 개정을 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왕 전 청장이 HD현대중에 특정 업체를 협력업체로 지정해 달라고 청탁하면서 벌점 규정을 수정해줬다는 최근 언론 보도에는 "2019년 9월 이뤄진 감점 규정 개정과 그로부터 3년 이상 지난 시점에 결정되는 협력업체 선정을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왕 전 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관련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방사청도 당시 규정을 개정한 것은 맞지만 합리화 차원이었고,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왕정홍 전 청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에 혼선을 주는 양상이다. 수사 과정에서 왕 청장이 특정 업체에 청탁을 한 대가로 사업 관련 특혜를 줬다는 보도가 흘러나오지만 경찰이 구체적 확인을 해주지 않으며 의혹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선 관련 내용을 담은 보도가 도마에 올랐다. 해당 보도는 7조원이 투입되는 KDDX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재임했던 왕 전 청장과 HD현대중 간 청탁과 특혜 제공이 있었다는 정황을 경찰이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HD현대중이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된 2020년 8월을 전후로 왕 전 청장이 HD현대중에 특정업체를 협력 업체로 지정해 달라며 청탁하고 왕 청장의 측근들이 이 업체의 주식을 사들인 정황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은 ‘왕 전 청장이 HD현대중에 유리하도록 사업자 선정 규정을 수정해주는 대가로 이런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본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었다.
"왕 전 청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실시할 예정인지?", "방사청이 진행 중인 KDDX 사업에 경찰수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등 질문에 국수본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대답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담당 경찰관, 검찰수사관, 기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송치된 ‘고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사건’ 이후 경찰은 구체적인 수사 상황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공식적 확인을 삼가는 분위기다.
피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 강화된 기조이지만 방산업계에선 이번 사안이 현재 진행중인 KDDX 사업자 선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단 점에서 관련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는 명확히 짚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D현대중이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된 KDDX 사업은 현재 그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 및 선도함건조’ 사업자 선정 과정이 진행 중이다.
국회도 질의를 통해 경찰의 이런 기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상욱 의원실은 해당 보도에 대해 경찰에 공식 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일각에서는 국수본 수사 관계자들이 언론에 수사내용 일부를 흘리면서 사건을 키우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내부 감찰을 검토했거나 할 계획이 있는지" 질의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사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모종의 이유로 흘러나왔다면 수사당국은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현재로선 해상 방위를 책임질 KDDX 사업자 선정에 혼선만 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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