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3연패’에서 무엇을 배울까 [아침햇발]
최혜정 | 논설위원
지난 24일 대통령실 앞마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은 윤석열 대통령의 심란한 속내가 드러난 자리였다. 굳이 낙선자까지 모두 초청해 한동훈 지도부에 대한 온전한 축하 의미를 덜어냈고, 만찬 테이블에는 윤 대통령 옆에 낙선자들을 나란히 배치해 마치 ‘우리 편’과 ‘너희 편’을 가른 듯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엔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눈을 맞추거나 따로 대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대표 중심으로 뭉치라’는 통상적 덕담 대신 “어려운 일 있을 때 한 대표가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줘라”라는 당부는, 번역기를 돌려보자면 ‘한 대표 마음대로 못 하게 잘 감시하라’는 의미다. 원치 않는 결과를 맞닥뜨린 윤 대통령의 자기방어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과 각 세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압도적 승리는 당원들의 ‘윤석열 포기 선언’과 같은 말이다. ‘배신자 프레임’은 되레 대통령과의 차별화 의미로 부각됐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하면 정권을 잃는다’는 당원들의 오랜 공포도 힘을 쓰지 못했다. 당원들은 조직표는커녕 ‘반윤’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올해 4월 총선 참패에 이어 지지 기반인 당원들에게까지 3연속 심판받은 형국이다.
당내에선 당무 개입 의심을 산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 터졌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판단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2022년 대통령실 주도로 이준석 전 대표를 강제로 축출한 ‘이준석 트라우마’가 작동한데다, 하필 당원들이 탐탁지 않아 하는 김건희 여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 ‘전략 미스’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임기만 제대로 채우면 고마운’ 수준으로 떨어졌고, 검증된 바 없는 초보 정치인이라도 야권의 대항마로 세워야 한다는 절박감만 남았다.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에 ‘미래 권력’이 당의 얼굴이 됐지만, 민심→당심→윤심의 선순환은 여전히 난망하다. 앞서 총선의 궤멸적 패배도 윤 대통령을 바꾸진 못했다. 약속했던 인적 쇄신은 찔끔 개각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은근슬쩍 유임됐고,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상민’(5년+이상민) 장관의 길로 가는 듯하다. 찬성 여론이 높은 ‘채 상병 특검법’엔 두 차례 거부권으로 답했고, 물 건너간 야당과의 협치 대신 지난 두달간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집중적으로 차관에 임명하며 ‘차관 정치’를 통한 부처 장악에 나섰다. 김 여사의 명품백 말바꾸기와 ‘황제 조사’ 논란에서 드러나듯, 주변에 ‘안 된다’고 말하는 이를 두는 것 같지도 않다. 윤 대통령 주변에선 대통령에게 입바른 소리를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가 소통이 차단됐다는 ‘간증’이 공공연히 들려온다.
대통령의 마이웨이는 결국 총선 참패의 타격감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과반 의석이 아닌 바에야 22대 국회의 108석이나 21대 국회의 113석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탄핵 저지선은 지켰고 여태껏 국회 도움을 받은 바도 없으니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간과하는 것은 민심의 역동성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탄핵’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일단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 같다. 김 여사는 명품백 수수 의혹에 사과하지 않은 이유로 ‘박근혜 학습효과’를 들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질 당시 이른바 ‘태블릿피시’ 보도에 사과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고 탄핵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탄핵 사유가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본질을 무시한 주장이거니와, 윤 대통령 부부가 참고해야 할 대목은 다른 곳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탄핵 과정을 언급하며 “2016년 총선에서 1당을 놓쳤던 것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가 한차례 나온 것이었다. 그에 따라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이 ‘학습’해야 할 대목은 총선 패배의 경고등을 무시하고 폭주했다가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의 회한이다. 윤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민심·당심을 윤심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뿐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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