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금 생산지에서 오욕의 ‘강제동원’ 현장 된 사도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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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은 에도 시대 일본 최대 금 생산지였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으로 악명이 높던 곳이다.
사도광산을 관광지로 운영하는 주식회사 '골든 사도' 누리집을 보면 "에도시대 때 도쿠가와 막부 등 정부에 재정 지원을 했다"고 기록될 만큼 상당한 금·은이 채굴됐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때 시기를 19세기 중반까지로 한정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동 역사를 회피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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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은 에도 시대 일본 최대 금 생산지였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으로 악명이 높던 곳이다.
사도광산은 제주도의 절반 크기(854.5㎢)로 오키나와 다음으로 일본에서 큰 섬인 사도에 있다. 이 섬에 있는 아이카와금산에서 1601년 금맥이 처음 발견됐다. 이후 에도시대(1603~1867년)에 일본 최대 금 생산지로 이름을 얻었다. 사도광산을 관광지로 운영하는 주식회사 ‘골든 사도’ 누리집을 보면 “에도시대 때 도쿠가와 막부 등 정부에 재정 지원을 했다”고 기록될 만큼 상당한 금·은이 채굴됐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때 시기를 19세기 중반까지로 한정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동 역사를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사도광산은 태평양전쟁(1941~1945년)이 시작되자 광산의 기능이 바뀐다. 금뿐 아니라 군사 물자에 필요한 구리·아연·납 등을 집중적으로 캐기 시작한 것이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노동자 1500여명이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사도광산에 동원됐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은 “도망갔다가 잡힌 사람이 두들겨 맞는 것을 봤다”, “지역에서 (데려갈 사람의) 할당이 있다고 해 사도로 끌려왔다”, “항상 배가 고팠고, 통제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등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사도광산은 1989년 3월 자원 고갈로 조업을 완전 중단했다. 현재는 에도·메이지 시대 당시 갱도와 작업자들을 재현해 만든 관광코스와 전시실 두 곳, 전통 찻집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지금도 미쓰비시 계열사의 100% 자회사인 ‘골든 사도’가 광산의 일부 지분과 관리권을 갖고 있다. 이 회사 사장은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되면 세계에서 보러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석재 김소연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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