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vs 북·러 ARF에서 뚜렷한 입장차…의장성명 내용 주목
북·러, 역내 긴장 고조 책임은 한·미
중국, 건설적 역할 이미지 노력
의장성명에 북·러 겨냥 내용 담길지 주목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과 주요 관련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외교장관 회의가 지난 27일 라오스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각 진영 간의 뚜렷한 견해 차이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한·미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북·러의 군사협력 등을 비판한 반면, 북·러는 미국과 동맹국이 군사적 대립을 조장한다고 반박했다. ARF의 의장성명에 북·러 밀착과 관련한 우려나 비판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조태열 장관은 지난 27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개최된 EAS와 ARF에 잇따라 참석해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매진하면서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동북아와 전 세계의 평화·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EAS와 ARF 회원국들이 북한의 도발 중단과 완전한 비핵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이행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며 지지를 요청했다. 조 장관은 EAS 회의 직전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의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양국 관계를 과시했다.
EAS는 아세안 10개국 및 한·중·일, 미국과 러시아 등 18개국이 참여한다. ARF는 EAS 참여국에 더해 북한 등 27개국으로 구성된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이다. 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당사국과 주요 관련국이 모두 포함돼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 가운데 가장 주목도가 높다.
러시아와 북한 측은 이들 회의에서 한목소리로 역내 긴장 고조의 원인을 한·미에 돌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EAS 회의에서 한·미가 최근 체결한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두고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브로프 장관은 ARF 회의에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군사적 대립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리영철 북한 주라오스 대사 또한 러시아 측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북은 ARF 때 예상보다 강한 발언을 했다”며 “북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고, 러시아도 큰 맥락에서 마찬가지였다”라고 전했다. 이에 조 장관은 회의에서 “한·미 핵지침 등은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정당한 대응이기 때문에 이를 호도하는 부당한 주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조 장관은 EAS 회의 이후 라브로프 장관과 별도로 약식 회동을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조 장관은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될 추가적 조치가 없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러시아에 전달한 것”이라며 “한·러가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소통 채널과 접점을 마련하고 필요하면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정도의 양해에 도달한 건 성과”라고 했다.
중국은 EAS 및 ARF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북·러 측의 입장을 두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중국은 평화·안정을 위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로 비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북·러 밀착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근 한국과 고위급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5월 한·중 외교장관 회담 이후 두 달 사이에 5차례 고위급 교류가 진행된 점을 언급하며 “중국이 한·중관계 관리에 분명한 태도 변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 변화와 중국 내 문제 등을 고려해 한국과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며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려는 점도 연동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향후 수일 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ARF의 의장성명에 북·러의 군사협력을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의장성명은 의장국이 회의에서 다룬 내용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요약·정리한 문건으로 일종의 국제적인 여론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의장성명에 기존처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우려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은 담길 수 있겠지만, 최근 부상한 북·러의 조약 체결 등 군사협력을 겨냥한 내용을 넣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러·북 밀착은 당사자 간 협력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의장성명에 포함하는 데) 반대가 심할 것이고, 이를 신경 쓰는 나라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라고 했다. 이번 의장국은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북한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라오스라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비엔티안(라오스) |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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