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그림 보더니 미대 나온 엄마 ‘깜놀’…알고보니 미술 천재, 이병헌과 연기도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7. 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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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
배우 겸 화가 정은혜씨 인터뷰
장애인 향한 시선 괴로웠지만
얼굴 캐리커처로 5000명 만나
그림으로 관계 맺으며 소통해
10월 브라질대사관 초청 전시
2년전엔 드라마로도 얼굴 알려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역 활약
지난 24일 정은혜 작가가 경기 양평군 소재의 공동 작업실 공간에서 평소 그림을 그릴 때처럼 캔버스 앞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평 한주형 기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또 동료들과 같이 어울려서 친해지고 하면 좋겠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거나 해야죠. 내려놓지 말고 일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살아야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 영희 역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겸 화가 정은혜 작가(33)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회화, 드로잉 등 국내외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최근 ‘포니정 영리더상’을 수상한 정 작가를 최근 경기 양평군 소재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 화가가 됐다. 사람들은 나한테 ‘작가’라고 하고 내 그림을 좋아한다”며 “나한테는 그림이라는 게 예술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다. 꿈은 다 이뤄졌다”고 말했다. 포니정재단이 수여하는 포니정 영리더상은 미래를 이끌 젊은 혁신가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올해는 정 작가와 신진서 9단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런 정 작가도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에 대해 ‘나는 왜 이렇게 다를까?’ 자책하며 사람들의 시선에 괴로워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시선 강박증이 극에 달했던 스물 두 살, 삽화가인 엄마의 권유로 엄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실에 매일 나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틈에서 잡지에 실린 모델의 모습을 따라 그렸다. 처음 그림을 완성한 그날의 기억은 정 작가에게도 또렷하다. “2013년 2월 27일날 향수를 들고 있는 외국 여자를 잡지 보고 그렸어요.”

한 번도 미술을 배운 적 없었지만 당시 그 드로잉은 정 작가 특유의 개성과 재능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예고, 미대를 나온 엄마도 그릴 수 없는 ‘정은혜만의 그림’이었다. 그때부터 엄마의 화실 절반은 정 작가의 작업 공간이 됐다. 주변 사람들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플리마켓에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말에 그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정 작가는 2016년부터 꼬박 3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 종일 인물 캐리커처를 했다. 그림을 그리러 나갈 때면 부모님과 남동생, 반려견까지 온가족이 총출동해 힘을 보탰다.

어떨 땐 몸에 종기가 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고, 한여름 무더위 속에선 대야에 얼음물을 받아놓고 발을 담근 채 그림을 그리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과 눈 맞추고 인사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손님들도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다 가시고. 차들도 막 쌩쌩 달리고 그래서 셀러(판매자)분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삼겹살 구워 먹기도 하고,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 맨날 고생하면서도 다 같이 그렇게 지냈어요. 그때 처음 술도 마셨죠, 뭐.” 정 작가가 지난 10년 간 인물 캐리커처로 그린 사람만 5000여 명에 달한다.

정 작가는 지난 2018~2019년 서울문화재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완성한 20호 크기의 자화상 ‘니 얼굴 은혜씨’(2019)는 서울옥션 경매에서 95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2022년엔 직접 쓴 첫 그림집 ‘니 얼굴’을 출간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 리코마레카스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회화 신작 16점을 선보였다. 현재는 ‘니 얼굴’ 대만어 출간을 기념해 대만의 대형서점 성품서점에서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에는 주브라질 한국 대사관 초청으로 현지에서 개인전을 연다.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정 작가는 담담하게 “그냥 그래요”라고 했다. 그에겐 작가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 작업실을 함께 써온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 동료들과 그림을 그리며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상 자체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포니정 영리더상 상금으로 받은 5000만원도 동료 8명과 함께 쓸 새 작업실 공간 계약에 사용했다. 쉴 틈 없이 바쁜 요즘도 인물 캐리커처 작업은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플리마켓에도 종종 나간다. “특별한 목표는 없고, 엄마처럼 오랫동안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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