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턴 이후 사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던 김우민, 그 덕분에 예선보다 3초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남정훈 2024. 7. 28. 14:15
예선에서 예상외의 부진으로 7위로 그치며 가까스로 결승행 티켓을 따내고도 “결승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내가 1위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씩 웃었다. 이는 결코 자만심이 아니었다. 지난 3년간 자신을 극한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당당한 자신감이었다. 한국 수영 중장거리의 간판 김우민(23·강원도청)은 그렇게 반나절 만에 상황을 역전시키며 당당히 메달리스트가 됐다.
김우민은 2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2024 파리 올림픽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2초50으로 3위에 올랐다. 금메달은 시종일관 선두에서 레이스를 치르며 3분41초78에 터치패드를 찍은 루카스 마르텐스(독일)에게 돌아갔고, 경기 막판 스퍼트로 김우민을 제친 일라이자 위닝턴(호주)이 3분42초21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김우민은 자신의 우상이자 한국 수영이 낳은 불세출의 슈퍼스타 ‘마린보이’ 박태환(35) SBS 해설위원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박태환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됐다.
27일 오전에 치른 예선에서 김우민은 막판 스퍼트가 눈에 띄게 떨어지며 3분45초52의 기록으로 조 4위에 머물렀다. 마지막 5조의 레이스 결과에 따라 결승 진출에 실패할 수 있어 마음을 졸였던 김우민은 “원래 제가 오전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오후엔 달라질 것”이라고 특유의 미소를 보였고, 그 말대로 김우민은 반나절이 지나 치러진 결승에서 180도 달라져 돌아왔다.
예선에서의 저조한 기록으로 1번 레인에서 결승을 치른 김우민은 출발 신호에 0.62초 만에 반응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8명 중 가장 빠른 반응속도였다. 첫 50m를 25초00, 2위로 통과한 김우민은 350m 지점까지 줄곧 마르텐스에 이어 2위로 레이스를 진행했다. 마지막 50m에서 위닝턴에게 역전을 허용하긴 했지만, 새뮤얼 쇼트(호주)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며 3위를 지켜냈다.
평소엔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대범하고 밝은 성격의 김우민이지만,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울먹거렸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김우민은 “시상식 중에 울컥할 때가 있었는데 잘 참았다. 그런데 인터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지난 3년 동안 준비했던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감정이 좀 북받쳐 올라왔던 것 같다. 노력의 결실을 이렇게 올림픽 메달로 보상받는 기분이라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반나절 만에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김우민은 결승에서 예선보다 무려 3초 이상 기록을 앞당겼다. 김우민은 “올림픽 전부터 예선 경기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라면서 “오히려 예선에서의 부진이 제게 더 큰 자극이 됐다. 전동현 코치님 등 선생님들이 ‘너를 믿고 수영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저를 믿고,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나만의 페이스를 되찾으니 잘됐던 것 같다”고 비결을 밝혔다.
김우민은 350m 지점에서 슬쩍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350m를 찍을 때 굉장히 힘들었는데, 마지막 턴을 하고 난 뒤에는 사지가 타들어가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도 올림픽 메달을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생각하며 참고 견뎌냈다”고 말했다. 이어 “터치패드를 찍고 관중석을 보니 태극기를 든 분들이 환호하고 계셨다. 그때 ‘아, 내가 메달을 땄구나’라고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박태환 이후 첫 한국 수영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더 위를 바라보고 있는 김우민이다. 그는 “올림픽 메달을 따서 정말 좋지만, 동메달로는 만족할 수 없다. 아직 올라갈 곳이 있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4년 뒤에도 딸 수 있지 않을까”라고 각오를 다졌다.
절친한 후배 황선우와 함께 한국 수영의 ‘황금세대’를 이끌고 있는 김우민은 파리에서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다. 박태환 이후 첫 메달리스트라는 영광은 김우민이 차지했지만, 황선우도 28일 주종목인 자유형 200m 예선을 치른다. 김우민도 주종목은 아니지만, 계영 800m 대비를 겸해서 200m에 출전한다. 김우민은 황선우를 향해 “일단 최상의 컨디션으로 200m 잘 치러서 같이 메달을 걸고 사진을 찍고 싶다”며 선전을 응원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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