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죄책감, 이걸로 풀었는데”…우리 아이는 행복하지 않대요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어린이집 하원 후에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도우미 손에 맡겨져야 하는 내 아기가 애처로웠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펑펑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 내가 없는 공간에서 온종일 보내야 할 아이에게 엄마의 공백을 ‘놀잇감’으로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이 날 때마다 아이가 재미있어 할 만한 장난감을 주문했다. 주문한 장난감이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오면 안도감이 느껴졌고, 퇴근해서는 아이와 택배를 뜯고는 “내일 이 장난감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엄마가 올거야”라며 아이를 위로했다.
둘째 출산으로 다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그간 아이에게 가졌던 죄책감과 미안함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아이의 하루를 함께하며 지금까지 내가 정말 내 아이를 몰랐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시간 동안 내 아이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후 딸은 집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날이 궂으면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거나 친구의 집에 가서 보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식사를 하면 어느덧 아빠가 올 시간, 즉 과거에는 엄마인 내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온다. 아빠가 오면 동요를 들으면서 춤을 추거나, 함께 블록을 가지고 놀든지 점토 놀이를 한다. 이러한 일과 중 새로운 장난감을 탐색하며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친구의 집에 가서는 친구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는 늘 주방 놀이를 하거나 인형 놀이를 했다. 인형 놀이를 할 때에도 항상 가지고 노는 인형 친구가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매번 같았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장난감이 아닌 함께 놀 수 있는 친구와 보호자였다. 그리고 내 아이는 다행히도 좋은 도우미 선생님을 만나 우리 부부가 없는 시간에도 아이는 충분히 바깥 놀이를 즐겼고, 또래 친구와도 잘 어울리고 있었다. 물론 주말에는 과거에도 지금도 엄마 아빠와 다양한 체험을 하며 보낸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우리가 특별히 외향적인 성향이거나 혹은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헌신적인 부모라서는 아니다. 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정리컨설턴트 윤선현 씨는 ‘윤선현의 정리학교’라는 동영상 강의에서 비슷한 사례를 소개했다. 어릴 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는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자 주말마다 마트에 가 장난감을 사주었다고 한다. 매주 비싼 장난감을 사준 아빠는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지만 정작 아이는 자신이 직접 고른 장난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마트에서 산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 대신 항상 가지고 노는 장난감만 가지고 놀았을 뿐이며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의 제안으로 마트에 갈 시간에 아들과 놀이터에 함께 가고 나서 아이의 밝은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고 한다.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아키는 정글짐 같은 커다란 놀이기구나 캐릭터 장난감은 아이가 금방 질려 하니, 이런 장난감은 어린이집이나 지역 아동센터 등에서 즐기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대신 집에는 레고나 나무 등 소박한 장난감만 갖추고 있단다. 이러한 ‘수수한 장난감’들은 밥처럼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배어 나오는 매력이 있고 놀이의 폭도 넓혀주기 때문이다.
당장 집에 있는 수많은 장난감을 줄일 수 없다면 미국의 미니멀리스트 조슈아 베커의 육아 방법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는 벽장 한쪽을 완벽하게 비우고 그 안에 아이의 모든 장난감을 보이지 않게 수납한 후 개수 제한을 두고 아이에게 매일 다음날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직접 고르라고 한다고 한다. 한정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아이에게 끈기와 응용력을 길러주고, 약속을 지키도록 함으로써 책임감도 가르쳐 줄 수 있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슈아 베커는 ‘작은 삶을 권하다’라는 책을 통해서 장난감을 지나치게 많이 사주는 부모는 아이에게 ‘다음 번 장난감, 다음 번 게임 다음 번 선물에서 행복을 찾도록’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즉 더 이상 부모가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번 장난감이 행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고 계속 그렇게 믿으면서 살아간다면 결국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난감을 전혀 사주지 않는 삶이 바람직한 부모의 삶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장난감을 비롯해 너무 나도 많은 물건을 베푸는 부모 역시 정답은 아닌 듯하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맞춰 적절한 개수의 장난감을 구비해주는 게 조금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내 아이가 불행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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