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는 한국 정부의 대리인이고, 국정원 요원은 외국스파이라는 美FBI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미 중앙정보국(CIA) 및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10년간 미국의 안보에 헌신한 한국계 여성, 이후 13년을 독립성과 전문성에서 세계 정상급인 미 싱크탱크 3곳에서 한미 동맹과 북한 정책 연구에 천착해온 수미 테리다. 그런 그녀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넘겨졌다. 7월16일 공개된 테리에 대한 기소장에는 한국 정부를 대리하면서 벌인 FARA 위반 모의 및 에이전트 등록 미필 혐의가 적시됐다. 연방수사국(FBI)의 뉴욕지부 부국장 대행인 크리스티 커티스는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됐다. 외국 스파이와 협력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지 끝까지 추적해 체포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정보활동엔 묵시적 동의…CIA도 그럴 것
국가 정보와 방첩이 가장 센 나라인 미국, 그 중심에 120년 전통의 FBI가 있다. 숱한 굴곡의 역사에도 국내 정보·방첩 및 안보 수사의 보루라는 프라이드가 넘친다. 안보를 위해서는 내외국인과 외교관을 가리지 않고 전화통화·이메일·텍스트·통신 감청, 대화 녹취, 휴대폰과 PC 해킹·점거, 금융거래 및 신용카드 내역 조회, CCTV 등 저장 데이터 활용, 사진 촬영, 미행 감시, 정보공동체(IC)에 협조 요청,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총동원함을 드러냈다.
주미 정보협력과 안보외교 일선을 맡은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테리의 기소장을 읽노라면 남다른 감정이 북받친다. 국정원 파견 외교관의 보안준칙 해태와 FBI 인내의 한계를 넘나든 행위, 국정원 본부의 현장 가이드 부실 및 대(對)FBI 사전 협력 실패가 읽히는 장면에서는 못내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미국 파수라는 FBI의 강고함과 관료제 이익이 결부된 의욕,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 자국의 안보는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동맹국일지라도 정보 수장의 동선을 공개하고 안보 인프라를 파괴해 버리는 냉혹한 정보전과 '조지 오웰' 식의 감시, 그리고 수사기관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는 산더미 같은 고정관념을 확인했다. 대배심(Grand Jury)을 설득하기 위한 덧칠도 느껴진다. 스파이 세계의 신비성을 이용, 로비스트 등록 위반과 간첩 활동을 섞고 뒤틀어서 국정원의 유가치 정보 소스로 만든 스토리텔링이 엿보인다. 이 거대한 힘 앞에 개인은 한없이 작다. 그래서 테리와 한국 외교관을 좀 변호하려 한다. 법적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정보활동이 위법이냐는 원초적 질문이다. 국제관습법은 비밀 정보활동을 전통적 주권 원칙의 예외로 인정한다.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너도 마찬가지"라는 '피장파장의 오류(Tu Quoque)'가 적용된다. CIA도 한국에서 그럴 것이기에 그렇다. 지난해 4월8일 이스라엘, 프랑스 및 한국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미국의 도청을 짐작하게 하는 미 합참 보고서가 유출됐을 때, 당사국들은 침묵해 주었다.
둘째, 기소장에 반복해 등장하는 '외교관 신분을 가장한 국정원 직원'의 존재 및 '국정원 신분을 안 밝힌 것'을 과연 문제 삼을 수 있느냐다. 이른바 '백색 요원'은 외교관이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주재국의 방첩 당국에만 '원소속이 국가정보기관'임을 밝혀 방첩 당국 접촉과 정보협력의 창구가 된다. 이번 기소장에 등장하는 요원들도 FBI에만 원소속이 고지되었을 터다. FBI가 으레 감시 중임을 인지한 채 처신한다. 이들이 영화 속 '007'이나 '마타하리' 같은 의심 행동을 했다면 진작 '기피 외교관(Persona non grata)'으로 조치됐을 것이다. FBI와 CIA의 서울 지부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협력 채널이자, 외교관 신분으로 각계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국정원이 그걸 몰라서 손을 못 대는 걸까? 방첩에는 상호주의가 작동한다. 보고만 있는 거다. 디지털 흔적 추적 능력은 FBI 못지않다.
한미 정부가 전향적으로 문제 풀어야
셋째, 범의(犯意·범죄행위임을 알고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었느냐다. 공공외교 차원의 해외 영향행사와 악의적 영향공작은 범주가 다르다. 한미는 자유민주주의와 규칙 기반 국제질서 가치를 공유한다. 북한 핵·미사일을 공동 위협으로 간주하는 핵동맹이고, 정보동맹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4월26일 미 확장억제 확약 및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하는 워싱턴선언을 했다. 그해 8월18일 한·미·일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안보협력을 선언했다. 한미 동맹 구조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것은 미국의 숙원이었다.
넷째, 테리와 국정원·외교부가 대리인-주인 관계냐다. FARA는 1938년 외국 선전원 형사소추에 초점을 맞추고 시행됐다. 1941년 관할이 국무부에서 법무부로 옮겨져 강화됐지만, 근 20년간 기소는 단 2건이다. 9건은 기소에 실패했다. 1966년부터는 외국 정부·정당에 이익을 주는 정치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2015년까지 7건을 기소했으나, 유죄판결을 받지 못했다. 이후 외국 대리인 등록 유도와 페널티 없는 공개에 치중하다, 외국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을 계기로 수사가 재개됐다.
미 정부는 ①대리인 테리가 주인인 한국 정부의 명령, 요구 혹은 통제 아래 있고 ②한국의 이익을 위해 ③미 정부와 관료들 앞에서 그 이익을 대변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한미 동맹과 북핵·미사일 대응, 한일 협력 증진을 위한 민관의 워크숍·컨퍼런스 주최, 신문 기고, 방송 출연, 의회 증언, 한미 인적 교류의 장 마련이 한국을 위한 '비밀 영향행사'인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오프 더 레코드'를 한국 관리와 공유한 것이 불법인지, 한국대사관이 테리 소속의 싱크탱크에 한미 이벤트를 의뢰하고 그 비용을 댄 것이 범죄인지, 적법한 연구펀딩을 위한 협의가 범법의 모의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10여 년에 걸쳐 국정원 요원이 선물 및 식사한 것을 두고 최고급 브랜드 이름으로 감성을 자극한 게 법정에서도 먹힐지는 두고 볼이다.
과도한 일반화는 본질을 흐린다. 안보 전문가 테리와 국정원의 워싱턴DC 외교관이 각자 안보이익에 전념하고 FBI 맨해튼지부가 소임을 다한 파생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법정 논쟁은 한미 동맹에 백해무익이 아닐까. 한미 정부가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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