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 민원에…고용부, 고용형태공시제 후퇴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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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기간제·하청 등 비정규직 사용 규모를 기업 스스로 공개하도록 하는 '고용형태공시제'의 공시기준을 완화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기업 부담을 이유로 1천명 이상 기업의 '사업장별' 고용형태공시 의무를 없앤 것인데, 제도 취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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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부담 들어 ‘사업장별’ 공시 완화
고용노동부가 기간제·하청 등 비정규직 사용 규모를 기업 스스로 공개하도록 하는 ‘고용형태공시제’의 공시기준을 완화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기업 부담을 이유로 1천명 이상 기업의 ‘사업장별’ 고용형태공시 의무를 없앤 것인데, 제도 취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인다.
28일 노동부 설명을 종합하면,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고용정책기본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1천명 이상 기업의 ‘사업장별’ 고용형태공시 의무 근거 규정을 삭제했다. 고용형태공시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도입됐다. 300인 이상 대기업이 직접고용 정규직·기간제·단시간 노동자와 파견·용역·도급 등 간접고용(소속외) 노동자 사용 규모를 매년 공시하는 제도다. 기업이 비정규직·간접고용 규모를 스스로 밝히도록 해 비정규직 고용을 자제토록 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고용 규모가 크거나 사업장이 많은 기업이 기업 단위로만 공시해 실효성에 문제점이 제기되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시행규칙을 고쳤다. 3천명 이상 기업은 2018년부터, 1천명 이상 기업은 2019년부터 사업장별로 공시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부는 한 회사 소속 사업장이라도 업종이 다르거나 다른 취업규칙·단체협약을 적용 혹은 노무관리·회계가 독립적인 경우 등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냈지만, 상당수 기업은 다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현대자동차는 울산·전주·아산 등에 공장이 있는데 “모두 완성차 생산 및 판매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독립적인 개별 사업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엘지(LG)전자는 창원·구미·서울 등에 사업장이 있지만 “모든 사업장이 제조업 사업장으로 동일한 단체협약·취업규칙을 적용받는다”는 이유로 공시하지 않았다. 기흥·화성·평택 등 사업장 8곳에서 별도의 취업규칙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동부는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사업장별 공시의무를 없애는 방법을 택했다. 노동부는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고용형태 현황을 세분화하여 공시해야함에 따라 추가적인 자료 작성에 따른 기업 부담이 증가되는 반면, 사업장별 고용형태 공시자료 활용도 및 고용구조 개선 효과는 낮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2022년 범 정부적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할 당시 노동부 자체 과제로 선정돼 지난해 시행규칙 개정이 진행됐다”며 “해당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기업들의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행규칙이 사실상 대기업들의 ‘민원’에 따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책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시 의무를 기업의 ‘자료작성부담’을 이유로 완화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공시 제도 자체가 자료작성 부담이 수반되는데다, 성별근로공시제, 일가정양립 공시제 등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같은 기업이라도 생산하는 제품·서비스에 따라 사업장마다 고용형태가 다를 수 있어, 사업장별 공시는 산업은 물론 지역 고용정책에 주는 함의도 있는데 이를 없앤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공시제도를 완화하는 것은 기업경영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도 “고용형태공시제 시행 이후 기업의 부실한 공시에 대해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공시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가 후속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던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며 “사업장별 사내하청 고용규모를 들키고 싶지 않은 대기업들의 민원에 정부가 스스로 제도를 무력화해버렸다”고 비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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