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 시대, 말라리아 공동방역의 추억

정인환 기자 2024. 7. 2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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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고 있다. 감염된 모기는 흡혈 행동이 변하지만 실제로 사람에 물려 가며 실험할 수는 없다. 짐 개터니, 미 국립질병관리본부 제공.

2024년 7월22일 서울 강서구에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7월9일 경보가 발령된 인근 양천구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 들어 7월20일까지 신고된 말라리아 환자는 307명. 이 가운데 서울 지역 환자가 58명(19%)에 이른다. 남북 접경지역인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발생하던 말라리아가 서울까지 남하한 모양새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이 오가는 시대에, 남과 북이 양쪽 주민의 건강을 위해 손을 맞잡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2008년 남북이 첫 말라리아 공동방역에 합의할 때 협상 실무자로 나섰던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ksm.or.kr) 사무총장과 ‘공동방역의 추억’을 떠올려봤다.

―서울에도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말라리아는 주로 접경지역에서 발생한다. 남북이 함께 방역해야 효과가 있다. 환자가 늘고 있다는데, 접경지역에선 전단과 오물풍선만 오간다. 답답한 노릇이다. 남북 모두 적절한 행동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말라리아 방역을 위해 남북이 협력한 경험이 있는데.

“2008년 처음 시작했다. 당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경기도가 남북협력 사업을 같이 했는데, 경기도 쪽은 접경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늘어 고민이었다. 북쪽도 마찬가지 상황이란 소식을 듣고, 남북이 같이 방역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도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북쪽 말라리아 방역 사업을 우회 지원하고 있었다. 2007년에 북쪽 민족화해협의회를 통해 공동방역 제안을 했고, 이듬해 초 개성에서 남북 전문가가 모여 협의를 시작했다. 방역에 필요한 약품, 모기 기피제, 방역 차량 등을 지원했고, 방역과 모기 발생 상황 등도 논의했다.”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이 2020년 8월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열린 ‘대북 지원협력 단체들이 본 북한 상황과 남북관계 전망\'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효과가 있었나.

“2007년 전국적으로 확인된 말라리아 환자가 176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1007명(57%)이 경기 지역 환자였다. 2008년 공동방역 결과 경기 지역 말라리아 환자는 51.8% 줄어든 485명까지 떨어졌다. 북쪽도 50%가량 환자가 줄었다고 했다. 공동방역 과정에서 어떤 약품이 더 효과가 있는지, 또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살충제 살포 외에 어떤 조치가 더 필요한지 등등의 경험도 나눴다.”

―왜 중단됐나.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5·24 조치를 발표했다. 개성공단 외에 남북 교역이 전면 중단됐고, 인도적 목적이라도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는 대북지원을 할 수 없게 됐다. 공동방역은 남쪽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2010년엔 예정대로 시행했다. 하지만 2011년에 마지막 물자지원을 한 뒤 정부가 가로막았다.”

―재개 노력은 없었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중반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2018년에 공동방역을 재개하기로 하고 1차로 약품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남북 당국 간 교류가 급물살을 타면서 민간 교류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북쪽도 공동방역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11월 말에 방북해 말라리아 공동방역을 포함해 중단된 협력 사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하고 2019년부터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그 여파로 결국 무산됐다.”

―남북 간 긴장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적어도 접경지역에선 남북이 상호비방과 적대행위를 멈췄으면 좋겠다. 서로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지 않나.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긴다. 한쪽에서 살충제를 뿌리면 모기는 바람을 타고 반대쪽으로 몇 ㎞씩 날아갈 수 있다. 남쪽이 방역을 아무리 잘해도 북쪽 모기가 남하할 수 있고, 북쪽이 잘해도 남쪽 모기가 북상할 수 있다. 모기는 국경이 없다. 남북이 각자 자기들끼리 방역을 잘한다고 해도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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