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제’ 모드? 아세안서 만난 美에 “대만”만 강조
미국은 ‘동맹연대’, 중국은 ‘자중자애(自重自愛·언행을 스스로 삼가 신중하게 함)’.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미·중이 모두 참석했지만, 양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필리핀, 인도 등 동맹·우방국들의 지원 속에 남중국해, 대만해협, 북한, 러시아 등의 문제에서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강조했다.
반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공개 회의석상이나 다른 나라와의 양자회담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삼갔다. 왕 부장은 26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한·중 양자회담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나 인도·태평양사령부 방문을 구체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외부의 방해와 충격을 피해야 한다”는 완곡한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피하고 한국, 일본과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여는 등 다른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자제 모드'는 아세안 국가 가운데는 베트남·필리핀 등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쟁을 겪고 있는 국가가 많은 점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외교장관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와 관련해 “1982년 유엔 해양법을 포함해 보편적으로 인정 받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평화적인 분쟁 해결을 추진할 필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9년 이 법에 따라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필리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중국은 이 판결이 “무효”라며 따르지 않고 있다.
EAS와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대사가 미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각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왕 부장은 여기에도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왕 부장은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대만’ 문제에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중 양자회담서 美 “남중국해 불안정 우려”
블링컨 장관과 왕 부장은 이날 비엔티안에서 별도의 미·중 양자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오판에 의한 미·중 간 충돌을 막기 위해 소통을 유지하고 마약퇴치나 인적교류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하자면서도 서로의 핵심이익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미·중)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이견이 있는 영역에 대해 솔직히 논의하고, 미국민과 세계를 위해 협력할 부분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 계속 외교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블링컨은 중 국이 최근 합성마약의 미국 유입을 차단하는 등 마약퇴치를 위한 협력 조치를 취하고, 오산에 의한 충돌을 막기 위한 양국 군(軍)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협력이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블링컨은 “미국은 인권을 포함한 미국의 국익과 가치, 동맹국과 파트너의 국익과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며 “중국에서 부당하게 구금되거나 출국금지 당한 미국민들의 사례를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동맹, 파트너와 함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이란 비전을 진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중국이 (필리핀의)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포함해 남중국해에서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미국은 항행의 자유와 국제법에 부합하는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중국이 러시아의 방위산업 기반을 지원하고 있는 데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그는 “중국이 유럽의 안보에 대한 이 위협에 대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계속해서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 “대만독립과 대만해협 평화는 물과 불”
중국 외교부는 왕이 부장이 과거 3개월 동안 양국이 외교, 재무, 사법, 기후변화 대화 그리고 양국 군 간의 소통을 유지해 왔다며 양국 국민의 왕래도 증가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왕 부장은 “미국 측의 대중 억제, 탄압은 변함이 없고 심지어는 더 심해진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왕 부장은 “미·중 관계가 직면한 리스크가 축적되고 도전도 늘어나 (관계)악화를 막고 안정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때에 있는데 방향을 계속 교정해 리스크를 관리 통제하고, 이견을 타협적으로 처리하며, 간섭을 배제하고,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대미 정책은 일관적으로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공영을 견지한다”며 “미국의 대중 인식이 계속 잘못돼 있어 자신의 패권적 로직을 중국에 투영한다”고 했다. “중국은 미국이 아니며, 미국처럼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은 패권을 휘두르지 않고, 강권을 휘두르지도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대만’ 문제에서만큼은 강력히 중국의 입장을 개진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으로, 과거에도 앞으로도 국가가 될 수 없다. ‘대만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독립 세력이 한 번 도발하면 우리도 한 번 반격할 것이고, ‘대만독립’의 공간을 부단히 줄여나가 완전한 통일 실현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과 분쟁이 있는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대해서도 왕이는 “중국은 국면을 관리하기 위해 필리핀과 임시적 타협안을 합의했다. 필리핀이 신용 있게 행동하며 건축재료를 보내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측은 불난 데 부채질하지 말고, 고의로 일을 만들어서 해상의 안정을 해쳐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도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왕 부장은 “중국 측의 입장은 당당하다. 계속해서 대화를 촉진하겠다”며 “미국 측이 단독 제재의 남용이나 확대 적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양측은 미얀마, 가자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양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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