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출근해”···폭우·태풍에도 ‘K-직장인’들은 쉴 수 없다

조해람 기자 2024. 7. 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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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폭우가 내린 지난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 산책로가 물에 잠겨 있다. 권도현 기자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폭우·폭염·태풍·지진 등 자연재해로 정부가 재택근무 등을 권고했을 때도 정시 출근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불이익을 겪는 빈도도 높았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61.4%가 “자연재해로 정부가 재택근무나 출퇴근시간 조정을 권고했는데도 정시 출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고 28일 밝혔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66.1%, 30대가 59.2%, 40대가 61.9%, 50대가 60.9%로 20대의 응답이 가장 높았다. 직급별로 보면 일반사원급(56.9%)보다는 중간관리자급(66.0%)과 실무자급(65.1%)이 높게 나타났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상용직(65.3%)과 파견용역·사내하청(66.7%)이 비교적 높고 일용직(55.1%)과 시간제(56.1%)에서 비교적 낮았다.

직장인 15.9%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이나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동료가 경험한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이런 상황에서 결국 직장인들은 개인 휴식 시간과 안전을 포기하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연재해를 이유로 연차를 차감하거나 협의 없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보육교사 A씨는 직장갑질119에 “8월에 태풍으로 시에서 휴원명령을 내리자 원장은 ‘나오는 애들이 없으니 교사들 개인 연차를 차감하고 하루 쉬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체육시설에서 일한다는 B씨는 “근로계약서에 비, 눈으로 인한 휴게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고, 이제는 비오는 날마다 쉬라고 한다”며 “7월은 장마로 12일도 일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예측하지 못할 재해가 늘면서 출·퇴근 조정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자료를 보면, 극단적인 이상기후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1970년대 711건에서 2000년대 3536건, 2010년대 3165건으로 늘었다.

공무원은 천재지변으로 출근이 불가능할 경우 복무규정에 따라 공가를 쓸 수 있다. 반면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적용받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에는 천재지변·자연재해 관련 출근 조정 규정이 없다.

직장갑질119는 “기후재난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문화 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며 “노동관계법에 기휴유급휴가제도를 신설하거나, 천재지변에 따른 결근을 소정근로일수에서 제외하는 등의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어떤 상황이든 반드시 직장에 출근해 일해야 할까요?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무조건 출근 문화’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영혼 없는 출근,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프리젠티즘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직장에 출근해 업무를 수행해 성과가 저하되는 현상”입니다. 질병·부상을 중심으로 논의된 개념이지만,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요즘은 ‘재난 상황의 프리젠티즘’도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115년 만의 폭우가 내린 2022년에는 “폭우에도 출근 걱정하는 사람은 3류다. 폭우에 출근 못 하는 사람은 2류다. 폭우에 출근하는 사람은 어류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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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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