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셋을 세죠. 하나 둘 셋 그리고 이제…."

김고금평 에디터 2024. 7. 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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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MC스나이퍼의 '봄이여 오라'로 본 '위로의 진짜 서사'…노래도 댓글도 짙은 상실과 이별의 아픔
MC스나이퍼(왼쪽)가 2007년 발표한 곡 '봄이여 오라'를 보컬 유리와 함께 부르는 장면. /사진=유튜브 캡처


"~감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두렵지만은/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셋을 세죠/하나 둘 셋 그리고 이제/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요.~"

힙하퍼 MC스나이퍼가 2007년 발표한 '봄이여 오라'의 주요 랩을 최근 다시 들을 때만 해도, 별 감동이 느껴지진 않았다. 활동 당시, 공격적인 래퍼로만 기억하던 기자의 시선엔 그의 이번 랩은 더 '문학적'이고 '감상적'이라는 점, 피처링으로 참여한 보컬 유리의 한(恨) 서린 창법이 8비트 흥겨운 리듬과 오묘하게 맞아 감칠맛이 도드라졌다는 '음악적 비평'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무엇보다 가사보다 멜로디에 더 집착하는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의미'보다 '감각'에 더 비중을 둔 것도 사실이다.

노래를 다 듣고 재미 삼아 댓글을 훑었다. 맨 상위에 자리를 차지한 '포에버위드(foreverwith)~'로 시작하는 작성자의 3년 전 댓글 앞에서 나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금세 왈칵 한 움큼 눈물을 쏟아냈다.

"제 남편이 세상을 등진 지 6주기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계절에 꽃잎이 흩날리듯 떠났습니다. 그 친구의 플레이리스트 마지막 곡이 '봄이여 오라'였습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래요. 그는 떠났지만 저는 아직도 셋을 세며 떠나간 그가 돌아오길.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미련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고 그를 보낸 세월이 적지 않았지만 떠난 이가 남긴 마지막 곡을 부여잡고 그 곡의 가사처럼 '하나, 둘, 셋'을 세며 그가 오기를 미련하게 바라는 마음을 읽고 망치로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 온몸이 경직됐다.

그 댓글의 대댓글 370여 개엔 "가슴이 아프다" "울컥한다" "힘내세요" 같은 공감과 응원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 곡은 2020년 4월 유튜브에 업로드됐고 현재 970여만회가 조회됐다.

곡의 영상은 시작부터 밝은 핑크빛 무대다. MC스나이퍼(랩)와 유리(보컬) 두 사람은 훈훈하게 인사를 나눈 뒤 슬프고 애처롭고 아련한 가사와 달리, 밝고 역동적으로 노래한다. 영상의 제목에도 "즐겁게 들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댓글을 읽고 다시 곡을 들으니, 가사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곡의 주인공들은 최대한 즐겁게 부르려 했지만, 그 곡에 얽힌 사연의 댓글 작성자는 그러지 못했다. 이 곡의 모든 마디가 '그'에겐 "즐겁게 소비되길" 원치 않았을지 모른다.


마음으로 닿은 가사는 흥겨운 분위기와는 다른, 심연의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의 눈물로 얼룩이 진 얼굴을 소매로 닦고/부서져버린 모든 것이 하루의 경계선을 잃고/나 새로운 아침을 열 수 없어/울먹이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내다 버려요~'첫 소절부터 이런 우수가 스민 사실 역시 댓글이 아니면 제대로 귀담아듣지 못했을 터였다. '새들은 알고 있을까 그리운 당신의 목소리/떠나지 않는 메아리 되어 내 맘을 비추는 봄의 빛/이 계절을 흘려보내니 봄이여 내게로 오라'

그리움에 사무쳐 애처롭게 계절을 보내며 작은 희망(봄)의 씨앗이라도 품어보려는 이가 결국 꿈꾸고 싶은 순간은 '원래, 그 자리, 그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셋을 센다, 아니 셋을 셀 수밖에 없다. 그 셋을 세면서 가장 행복했던 '화양연화'를 봉인된 찰나에서 찾을 것이다.

'가로등에 걸쳐진 저 시간을 잡아 끌어내어 주머니 속에 주워 담고/기다림으로 하루를 보내죠/감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두렵지만은/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셋을 세죠/하나 둘 셋 그리고 이제/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래요'

가사와 댓글이 궁금해 곡을 만든 MC스나이퍼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렵게 전화통화에 응한 그는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런 댓글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 곡은 일본 가수 마츠토야 유미가 1994년 발표한 곡 '봄이여, 오라'(春よ、?い)를 MC스나이퍼가 샘플링해 다시 만들었다. 그는 "유미씨가 어느날 자신의 신곡 작업을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만국박람회 공연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 공연 리허설 중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며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이 노래를 새 음반 타이틀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했다.

MC스나이퍼는 유미씨로부터 이 노래 비하인드 스토리(개인적인 사랑이야기여서 밝히기 곤란)를 듣고 바로 한국에서 작업에 착수했는데, 가사만 거의 한 달 가까이 걸려 완성했다고 했다.

'봄이여 아직 보이지 않는 봄이여 헤매다 멈춰 설 때에/꿈을 주는 그대의 눈길이 어깨를 감싸리/꿈이여, 얕은 꿈이여, 난 여기에 있습니다/그대를 생각하면서 홀로 걷고 있습니다'(원곡)

원곡의 가사도 시적 외피로 둘러싸인 아픈 그리움이 짙게 사무쳤는데, MC스나이퍼는 곡의 시작부터 끝맺음까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촘촘하고 절절한 사연으로 듣는 이의 심장을 단 한 순간도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고갤 떨궈 떨어뜨린 눈물이 땅에 뒹구네/얼어붙은 달빛조차 제 맘을 녹이지 못해/구름 뒤에 석양 또한 제 감정을 속이려 들 때/새들마저 바람 위로 펼치지 않는 날개/비밀을 간직한 채 시간 속을 비행하나/난 이대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눈을 감고 뜨니 당신을 느낄 것만 같아/감은 눈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날리는 바람'(MC스나이퍼의 가사)

/사진=유튜브 캡처


MC스나이퍼는 이 가사를 녹여낸 배경으로 "손에 잡을 수 없었던, 끌어안아도 가질 수 없었던 그런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다"며 "그중 가장 가까운 소재가 사랑이었다"고 했다. 가사 작성에 한 달이나 걸린 시간을 두고서는 "원곡의 가사가 너무 아름다웠고, 그 원곡의 느낌과 표현을 최대한 가져가고 싶어 그것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전화 인터뷰가 끝난 뒤 MC스나이퍼는 "그 분의 사연을 다시 보니까, 노래에 드라마가 입혀 진 느낌"이라며 "나도 댓글을 달아야겠다"고 했다.

누구나 상실과 이별, 아픔을 겪는다. 어떤 이는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이별을 곱씹으며 아픔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린다. 상실을 경험한 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정지 상태로 나머지 인생을 대신하는 건 그 또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렇게 읊조리거나 외칠 수밖에 없다. "두렵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셋을 세죠. 하나 둘 셋 그리고 이제."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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