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시절의 생기와 온기를 모은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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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청년이 있다면, 나희덕의 《서시》에는 제대로 지피지 못해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을 탓하는 여인이 있다.
조선대를 경유해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인이 수능 문제의 단골이 된 것은 가장 정확한 구조로 시를 쓰면서도 가장 깊은 보편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예민하게 그것을 감지해 누에고치처럼 실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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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윤동주의 《서시》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청년이 있다면, 나희덕의 《서시》에는 제대로 지피지 못해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을 탓하는 여인이 있다. 아직 환갑을 맞이하지 못한 시인은 《서시》의 말미에 "내 마음이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며 소멸에 대한 회한을 드러낸다.
나희덕은 당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시인이다. 젊은 시인치고는 시인의 시가 모의고사는 물론이고, 수능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안치환에 의해 운동가요로, 《그곳이 멀지 않다》는 많은 이의 사랑받는 애송시로 자리했다.
조선대를 경유해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인이 수능 문제의 단골이 된 것은 가장 정확한 구조로 시를 쓰면서도 가장 깊은 보편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번 시집은 등단 35주년을 맞아 초기 시집 여섯 권에서 시인이 직접 고른 시들을 한데 묶었다. 앞서 말한 두 편의 애송시도 이 시집에 담겨 있어 반갑다.
시인을 감싸고 있는 가장 큰 정서 중 하나는 고통이다. 그것은 가족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현실, 이 시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불안 등이 같이한다.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이 복도에서는》 중에서)
사실 병원에 오래 살았다고, 누구나 타인의 울음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절망에 깊이 들어가 있으면, 타인은 눈에 잘 보일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은 예민하게 그것을 감지해 누에고치처럼 실로 만들어낸다. 발문을 쓴 안희연 시인은 "나희덕의 시는 '잠 못 이루는 고통과 혼돈의 날들 속에서도 또박또박 사랑을 말'하며, '죽음의 악력에 끌려가지 않고 기어코 삶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 내는 시"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돌아가면 시인은 고통을 통해 진주를 만드는 조개의 여정이고, 비단을 만드는 누에고치의 여정을 닮을 수밖에 없다.
"슬픔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슬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슬픔이 나를 통과해 갔지만, 오직 시들만이 시간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슬픔에 기대어 시를 쓰게 되었고 타자의 슬픔 곁에 머물 수 있었으니, 슬픔이라는 식솔에게 감사할 따름이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지난 35년간 주로 창비를 통해 적지 않은 시집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이 책에 수록된 것은 첫 시집부터 2009년 출간된 5번째 시집 《야생사과》(창비)에 수록된 작품이다. 작가는 시를 고르면서 '젊은 날에는 피어있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잘 시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간다'며, 그 연두의 시절이 지닌 생기와 온기가 오롯하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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