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최저임금을 5%나 올릴까

정남구 기자 2024. 7. 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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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엔저의 그늘 ‘실질임금 추락’
엔화 약세로 수출 실적 큰 폭 호전
닛케이지수 사상 최고치 경신
실질임금은 26개월 연속 하락
“민간소비 살리려면 임금 올려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시장에 상장된 종목 가운데 225개를 뽑아 산출하는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일본 증시를 대표하는 주가지수다. 올해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온 이 지수는 지난 11일 장중 4만2426.77엔까지 올랐다. 사상 최고치였다.

“‘잃어버린 30년’ 벗어났다”지만

1989년 경기 호황 뒤 거품 붕괴를 거치며 장기 하락세를 이어온 닛케이지수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2012년 말부터다. 2차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서고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전개하기 시작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추구한 이 정책은 일본 엔화를 약세로 돌려세웠다. 이 정책은 아베가 그해 9월26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될 때 분명해졌고, 12월 총선거가 실시되기 전부터 엔화와 주가를 움직였다. 2012년 10월 말 엔화는 1달러당 79.76원에서 올해 6월 말 160.39엔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8928.29엔에서 3만9583.08엔으로 올랐다.

일본 엔화의 약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23년 3월부터 제로금리에서 벗어나 기준금리를 올리고 미국과 일본 간 금리차가 점차 벌어지자 2023년 이후 가팔라졌다. 엔 약세는 수출기업들의 실적 호전을 이끌고, 수출 비중이 큰 상장사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닛케이225 지수는 엔 약세가 가팔라진 2023년과 2024년 상반기에 상승세가 특히 두드러졌는데, 2023년 중 28.2%나 뛰었고 2024년 상반기에도 18.3% 뛰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지난 11일 장중 4만2426.77엔까지 올랐다가 다음날부터 급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일본 상장사 주가 상승이 엔화 약세에 얼마나 영향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엔화는 지난 11일 장중 달러당 161.62엔에서 25일 152.66엔까지 가치가 급등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계속 미뤄지면서 초약세 행진을 하던 엔화가 미일 금리차 축소 기대감이 커지면서 급격히 강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자 거래일수로 9일 만에 닛케이지수가 10.3%나 급락했다.

사실 달러로 거래하는 외국인 투자가의 계산으로는 닛케이225 평균주가 상승률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다. 2012년 10월 말 111.94달러에서 올해 6월 말 245.96달러로 119.7% 상승한 셈이니, 11년8개월간 연평균 6.98%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지수는 1만3096.46에서 3만9118.86으로 198.7% 올라, 연평균 상승률이 9.83%에 이른다. 닛케이 평균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어도 엔화 가치 하락분을 고려하고 보면, 수익률이 다우지수만 못한 것이다. 물론 같은 기간 1912.06에서 2797.82로 46.3% 오른 코스피지수는 달러로 환산해보면 상승률이 15.5%에 불과하고, 연평균 상승률은 1.24%로 더 초라하긴 하다.

닛케이지수는 앞서 지난 2월22일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바 있다. 1989년 12월29일의 장중 사상 최고치 3만8957.44엔(종가는 3만8915.87)을 34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이를 일본 경제가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난 상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9일치 다이키쇼키 고정 칼럼에서 “민간기업 설비투자가 늘고, 지난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이 두드러졌다”며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벗어나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추이로 보면, 이런 낙관론은 근거가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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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최저임금 인상 ‘극약 처방’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는 일본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실질성장률이 -3.9%였다. 그런데 2021년 3% 성장하고 2022년에도 1.7% 성장을 하자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물가상승률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하지만 2023회계연도 성장률은 1%로 다시 떨어졌다. 분기 성장률 추이를 보면 갈수록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전기 대비 성장률이 2023년 1~3월 1.2%에서 4~6월 0.9%로 떨어진 뒤, 7~9월에는 -1%를 기록했다. 10~12월엔 0% 성장했고, 2024년 1~3월에는 -0.7% 성장했다. 뒷걸음질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는 민간소비의 부진이다. 가계최종소비지출은 2023년 1~3월에 전기 대비 0.7% 증가한 것을 끝으로 4~6월 -0.7%, 7~9월 -0.3%, 10~12월 -0.4%, 2024년 1~3월 -0.8%로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웃도는 만큼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고는 경제가 선순환으로 가기 어렵다.일본이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던 것도 소비 부진 탓이었다.

그러나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수준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물가지수는 2019년 0.5% 상승에 그치고, 2021년에는 0.2% 하락했다. 그러다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엔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까지 겹쳐 상승률이 2022년 2.5%, 2023년 3.2%로 치솟았다. 올해 6월 현재도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2.8%에 이른다. 그런데 명목임금이 물가상승률만큼 오르지 않아 실질임금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지난 8일 발표한 매월근로통계조사 결과를 보면, 5월분 1인당 실질임금은 전년 같은 달에 견줘 1.4% 줄면서 2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2020년을 100으로 한 실질임금(5인 이상 사업체) 지수는 2022년 99.6, 2023년 97.1, 올해 1~5월 평균은 84.6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가 극약 처방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이다. 노동자의 생활 안정 없이는 민간소비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지난 24일, 10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전국 평균 권고치를 5%(50엔) 인상해 시급 1054엔으로 올렸다. 지난해에도 43엔(4.5%) 올린 바 있는데, 이번에 더 큰 폭으로 올린 것이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이 권고치를 기준으로 삼아 각 도도부현의 심의회가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이 2022년 0.2% 줄고, 2023년 1.1%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4월 누적으로 0.9% 감소했다. 3년 연속 실질임금 감소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2.6%(한국은행)보다 크게 낮은 1.7% 올리는 데 그쳤다.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경제부장, 도쿄 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랫동안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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