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존도 비참한 몰락…인생과 나라 망치는 '이 행동'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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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여기저기서 일어난 일들을 깨알같이 취재해 유형별로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데 천재입니다.

여러 이야기들 중 군주의 자리에서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잘못으로 나라를 망친 왕들의 사례들도 있습니다.

경박하고, 무례하고, 욕심을 부려 망한 케이스들이죠.

이번엔 편벽한 행동과 무례함으로 나라를 망친 왕들의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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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편벽하고 무례한 군주는 나라를 잃는다 (글 : 양선희 소설가)

한비자는 여기저기서 일어난 일들을 깨알같이 취재해 유형별로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데 천재입니다. 여러 이야기들 중 군주의 자리에서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잘못으로 나라를 망친 왕들의 사례들도 있습니다. 경박하고, 무례하고, 욕심을 부려 망한 케이스들이죠. <십과十過> 편엔 그런 사례가 열 개나 있지요. 이번엔 편벽한 행동과 무례함으로 나라를 망친 왕들의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1
춘추시대 초(楚) 나라 영왕(靈王)이 신(申) 땅에서 회합을 열었다. 이때 송(宋) 나라 태자가 늦게 도착하자 그를 잡아서 가두었다. 또 서(徐) 나라 군주에겐 경멸을 보내고, 제(齊) 나라의 실권자인 대부 경봉(慶封)을 구속했다.
이에 중사의 일을 보는 관리가 말했다.
"제후 회합에서 무례하면 안 됩니다. 회합엔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과거 하나라 걸왕이 유융의 땅에서 회합했을 때 유민이 배반했고, 상나라 주가 여구에서 제후들과 사냥을 할 때 융적이 배반했습니다. 무례했기 때문입니다. 군주께선 잘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영왕은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했다. 그 해가 끝나기도 전에 영왕이 남쪽으로 순행을 나갔는데, 신하들이 그 틈을 이용해 그를 쫓아냈다. 영왕은 굶주리다 죽었다. 이게 바로 행동이 편벽하고, 무례하면 자기가 망한다는 말이다.
#2
옛날 진(晉) 나라 공자 중이(훗날 춘추오패 중 한 명인 진문공이 되는 사람)가 망명길에 올랐을 때 조(曺) 나라를 지났는데, 조나라 군주가 그의 윗도리를 벗기고 그 몸을 들여다보았다. 그 앞에서 희부기와 숙첨이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숙첨이 나중에 조나라 군주에게 말했다.
"제가 진나라 공자를 보니 그 인물이 비상하였습니다. 주군께서는 무례하게 대하는 우를 범하셨으니 만일 그가 어느 날 자기 나라로 돌아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우리에게 해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그를 죽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나 조나라의 군주는 듣지 않았다. 희부기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우울한 기색을 보이자 그의 아내가 물었다.
"공이 밖에서 돌아오신 뒤 안색이 좋지 않으니 무슨 일입니까?"
"내 듣기로, 군주의 복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나 화는 연좌해서 내려온다고 하였소. 오늘 우리 군주가 진나라 공자를 초청하여 무례를 범했소. 내가 그 앞에 있었소. 그래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오."
"제가 보기에도 진 공자는 대국의 군주가 될 상입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따르는 자들도 대국의 재상감이지요. 지금은 궁한 처지라 망명길에 올라 조나라를 지나는 길이었는데 조나라가 무례를 저질렀으니 만일 나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그 무례를 벌하려 할 것입니다. 즉 그 처음이 조나라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먼저 조나라 군주와는 별개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좋은 생각이오."
희부기는 단지 안에 황금을 아래에 깔고, 그것을 음식으로 덮은 뒤 다시 그 위에 벽옥을 덮어 한밤중에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보냈다. 공자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맞아 두 번 절하고 벽옥은 사절하고 음식만 받았다.
공자 중이는 조나라에서 초나라로 들어갔다가 다시 진(秦) 나라로 들어갔다. 진에 들어온 지 3년 되었을 때, 당시 진나라 군주인 목공이 군대를 일으켜 무장한 병거 5백승과 이를 몰고 출전하는 기마 2천 명, 그리고 보병 5만을 내주어 중이를 진나라로 들여보내 군주로 세웠다.
중이가 즉위하고 3년이 되었을 때 병사를 들어 조나라를 쳤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조나라 군주에게 말했다.
"숙첨을 결박해 내보내면 과인이 그를 죽여 본보기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희부기에게도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나의 군사들이 성 가까이로 가고 있으나 나는 그대가 나를 외면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노라. 그대의 동네 문 앞에 표식을 해두면, 과인이 영을 내려 군사들이 그곳을 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조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친척들을 이끌고 와서 희부기의 마을에서 보호받은 자가 칠백여 집이나 됐다. 이는 예의가 얼마나 소용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나라는 진(晉)과 초나라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로 그 나라의 위태로움이 마치 계란을 쌓아놓은 것(累卵)과 같았는데, 이토록 무례한 짓을 하였다. 그러니 어찌 대가 끊이지 않을 수 있는가. 예의를 지키지 않고 간하는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대가 끊긴다는 게 바로 이런 말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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