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 “트라우마·징크스·루틴 안 만드는 게 슬럼프 없는 비결”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믿고 보는 배우 조정석이 자신의 '주종목'인 코미디로 여름 극장가에 돌아왔다. 《엑시트》(2019) 이후 5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7월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코미디다. 극 중 조정석은 여장까지 감행하며 역대급 캐릭터 변신을 감행, 예측 불가한 상황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코미디 장인의 저력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이주명, 한선화, 신승호 등 대세 배우들까지 합세해 역대급 팀워크를 선보인다. 특히 《파일럿》은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감독의 작품으로, 현실적인 상황들을 독특한 시선과 유머로 재해석하는 김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후문이다.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조정석을 만났다.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다.
"그간 촬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지금 시기에 몇 작품을 동시에 개봉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뭐 하고 지내냐는 근황을 묻는 분이 많다. 사실 너무 바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사이 아이가 태어나 정신없었다. 딱 5살이 됐다. 촬영이 없을 때는 아이와 작정하고 열심히 놀아주는 아빠다. 그사이에 영화도 촬영했고 드라마 《세작》도 방영됐다."
《파일럿》의 시나리오를 읽은 첫 느낌은.
"제 자신과 대입이 잘됐다. 한 캐릭터가 갈등을 헤쳐 나가며 성장해 가는 과정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술술 잘 읽혔고 재미있더라. 개인적으로 뮤지컬 《헤드윅》을 오랫동안 해서인지 여장이 어색하지 않아 제 모습을 연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막상 여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어땠나.
"분장팀도 저도 처음엔 뭔가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본격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테스트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고 그래서 완성된 모습이 영화에 반영됐다."
실제 인생에서 사면초가의 상황이 닥친다면 여장을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다. 심지어 열심히 할 거다. 그래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다."
앞서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고 했다. 20대부터 하고 있는 뮤지컬 《헤드윅》도 도전의 일환인가.
"《헤드윅》은 할 때마다 새롭다. 매년 할 때마다 도전하는 기분이고 또 내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20대 때 도전했는데 어느덧 40대가 됐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나이가 들면서 분명 무대 위에서 노련해지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연차를 무시 못 한다는 걸 몸소 느낀다. 동시에 아쉬운 점은 체력이다(웃음). 사실 40대가 됐을 때 파란만장한 헤드윅의 모습은 어떨지 생각을 많이 했다. 20대 때 저와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뿌듯하다."
극 중 나이트에서 춤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에피소드는 없었나.
"박수받고 그랬다(웃음). 사실 음악 없이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이라 처음에는 느낌을 찾으려고 했는데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 직업이니까 열심히 했다."
극 중 직장동료로 열연한 이주명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이주명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도 잘 봤다. 그 작품 속 모습이 너무 좋았다. 다양한 작품을 접하다 보면 연기가 좋은 배우들은 눈에 띈다. 이후 그 배우를 가까이서 보게 되면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인성이 좋았을 때 그렇다. 결국 사람 됨됨이와 연기는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이주명 배우가 딱 그랬다."
극 중 한선화와 친남매 케미가 예사롭지 않았나.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텐션과 에너지 모두 너무 좋은 친구였다. 함께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재미있었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도 무척 재미있게 봤다."
《건축학개론》(2012)의 납득이 역할을 맡은 이후 줄곧 주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슬럼프가 없는 배우다. 혹시 대중이 모르는 힘든 시기가 있었나.
"사실 저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는 편이다. 트라우마나 징크스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힘들 때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쉰다. 집에 있을 때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다음 날 차에 타는 순간,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의도적으로 루틴도 만들지 않는다. 공연을 오래 해와서 그 부분이 철저하다."
가벼운 질문 하나 하겠다. 혹시 아이가 연예인을 하고 싶다고 하면?
"자기가 원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제 마음으로는 반대다.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는 건 좋지만 주목된 삶이지 않나. 부모로서는 아이가 자유롭게 일상을 누리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제가 못 누리는 건 아니다(웃음). 주목을 받다 보니 많은 분이 계신 곳에 혼자 가는 게 쉽지는 않다."
누리고 싶은 일상이 있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막연히 '나중에 평범한 회사원이 돼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며 아이들에게 허그를 하고 회사 가는 평범한 가장 말이다. 퇴근할 때는 치킨이나 바게트 같은 걸 사와서 아이들과 같이 먹는 그런 일상을 생각했다."
지금 회사원의 삶을 산다면, 답답하지 않을까(웃음).
"맞다. 제가 《유퀴즈》에 나갔을 때 신원호 감독님이 저에 대해 인터뷰를 해주셨는데, 연기할 때 신명 난 것처럼 한다는 표현을 해주셨다. 그 말에 동의한다. 어릴 때도 수줍음이 많고 사춘기도 빨리 와 내성적인 아이였는데도 학예회 때는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 수련회에서 춤도 췄다. 고등학교 때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글쎄, 무대든 TV든 스크린이든 계속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아직도 한창때야' 하면서 말이다(웃음). 가장으로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희 딸이 10년 후엔 중학교 2학년이 된다. 그때는 저와 안 놀아주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배우 정상훈과도 호흡은 맞춘다. 둘 다 뮤지컬 무대에 오랫동안 서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사실 제 모델이다. 인생의 지침서 같은 형님이다. 다방면으로 활동을 많이 하신다. 가장 친한 측근으로서 봤을 때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100점 만점 같은 사람이다. 그런 분이 저랑 제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사람은 결국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성과 연기가 비례한다는 말에 대한 부연설명도 듣고 싶다. 왜 그럴까.
"제가 이런 걸 논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좋은 인성을 가진 누군가가 그렇지 못한 인성을 가진 누군가와 같이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고 치면,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연기를 잘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와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좋은 인성의 어떤 사람은 그 사람 주변에 또 많은 사람이 함께할 것이고 그러면서 관계성도 많이 배워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은 했나.
"30대 초반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떤 계기보다는 무대에서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슈트 입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슈트 간지? 그런 걸 못 해봤다. 대중에게 비주얼적으로 멋진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