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고양이 성기에 가시가 났어요”···근데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7. 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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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1] 저주와 축복의 양극단을 오간 동물, 고양이입니다. 13세기 교황 그레고리 9세는 “검은 고양이는 악마의 상징”이라고 했지만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끝없는 기쁨과 경이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도도하게 갈 길을 가면서도, 인간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고양이는 언제나 ‘영물’(靈物)이었습니다. 애정과 혐오를 시계추처럼 오간 그들은 결코 우리 인간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현대 과학이 굳건히 자리를 잡은 뒤에도 고양이는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번식 과정이 그랬습니다. 수컷 고양이의 성기에 돋아난 ‘가시’는 생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지요. 이들의 성기에 가시가 돋아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응당한 이유는 있는 법. 우리 인간의 파트너로 굳건히 자리를 지킨 고양이의 사생활을 탐구합니다.

오랜 시간 고양이는 인간에게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자아내는 영물이었다. 8개월된 샴 고양이. [사진출처=Karin Langner-Bahmann]
고양이 성기에 가시가 돋쳤다?
“고양이 성기에 왜 가시가 있지?”

레지널드 이네즈 포콕은 1880년대 활동한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물에 대한 방대한 호기심으로 학계의 거물이 되었지요. 1885년부터 20년간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거미를 비롯한 곤충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너희들, 거기에 무슨 짓을 한거야.” 세계적인 동물학자 레지널드 이네즈 포콕.
1904년부터는 영국의 브리스틀 동물원의 책임자로 근무했지요. 이때부터 그는 포유류의 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의 예리한 시선이 고양잇과 동물들의 성기에 꽂혔습니다. 주요부위에 오돌토돌 가시가 여럿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7년 포콕은 여러 해 연구 끝에 결과물을 발표합니다. “고양잇과 동물들의 성기에 가시가 있는 이유는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고양잇과 동물들의 독특한 사랑법
그의 말마따나 고양이를 비롯한, 호랑이·사자·표범과 같은 고양잇과 동물 수컷 대부분이 성기에 가시가 돋쳐 있었습니다. 암컷에 고통을 유발하는 가시가 어떻게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는 것일까요. 우선 그들의 사랑을 살펴봅니다.
“엄마, 쟤들 뭐해요.” 12세기 중국화가 마오가 그린 정원의 고양이들.
따뜻한 봄날, 암컷 고양이 한 마리가 안절부절못합니다. 발정이 나서였습니다. 북반구에 사는 고양이들은 대개 2월부터 8월까지 짝을 맞을 준비가 됩니다.

수컷 여러 놈이 암컷 한 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싸움에서 이긴 우람한 놈이 승자에 오릅니다. 놈은 암컷에게 다가가 짝지을 준비에 들어갑니다. 암컷은 몇 번 거절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몸을 허락합니다.

격렬한 사랑의 끝에 수컷이 자신의 상징을 빼냅니다. 암컷은 고통스러운 듯 크게 울부짖습니다. 수컷 음경에 약 1mm 크기의 가시 120개가 암컷의 내부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음경 가시’(penis spines)입니다.

“기자 양반 취재할 게 그리 없소?” [사진출처=오거스터스 비누]
음경가시에도 진화 이유가 있다?
수컷이 이렇게 괴이쩍게 진화한 이유는 암컷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여혐’이어서가 아닙니다. 짝짓기 내내 가시가 암컷의 자궁을 자극하면 배란이 촉진되기 때문입니다. 배란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 결국 음경가시가 암컷의 몸을 임신 가능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의미지요. 일부 학자들은 이 자극이 고통이 아닌 성적 자극이 될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고양이는 모든 집사들이 알다시피 깔끔한 동물입니다. 첫 짝짓기가 끝난 후 암컷은 자기 성기를 깨끗이 닦습니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다른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한다면, 그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양이의 샤워 시간만큼은 무조건 지켜줘야 하는 것이지요.

“씻을 때 문열지 말랬지?” [사진출처=DecafPotato]
자체 샤워가 끝나면 암컷은 또 다른 수컷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랑이 연거푸 일어나는 것이지요. 약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암컷 고양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놈들의 아빠는 누구일까요.

고양이의 신체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새로 태어난 두 마리 새끼의 아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짝짓기에서 각각 수정이 일어나 한날한시에 같은 배에서 씨 다른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너희들의 아빠를 묻지 말거라.” [사진출처=Nandhinikandhasamy]
음경가시 있는 동물 고양이 외 또 있다?
음경가시를 가진 동물은 고양이 뿐만은 아닙니다. 설치류인 쥐에게서도 이 같은 가시가 발견되지요. 이유는 역시 같습니다. 암컷의 자궁을 자극해 배란을 촉진하는 것. 역시 번식을 위한 진화지요.

고양이와 쥐는 천적관계지만, 번식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에게서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건 자연계에서도 통용되는 셈입니다.

우리와 친척 관계인 영장류에게서도 음경가시가 발견됩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갈라고는 음경가시로 유명한 동물이지요. 이들은 짝짓기할 때 음경가시를 활용해 서로의 성기를 더욱 단단히 고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번식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저도 신체의 비밀이 하나 있긴해요. 영장류 중 하나인 갈라고. [사진출처=acobmacmillan]
우리 인간과 98% 이상의 유전자 일치율을 보이는 침팬지 역시 음경가시를 가진 대표적 동물입니다. 우리와 이들은 500만년 전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인간 중에서도 침팬지와 비슷한 음경가시를 가진 사례가 종종 보고되곤 합니다. 성기에 우둘투둘 돋아있는 돌기가 성병이라는 오인을 부르기도 합니다. 의학계에서는 이 돌기가 해롭지도 않고, 병도 아니라고 진단합니다.

“생각보다 우리 친구들이 많네 그려.” [사진출처=David Corby]
생물학자들은 이를 흔적기관(Vestigiality)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꼬리뼈가 과거 우리의 꼬리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듯, 이 음경가시 역시 과거의 흔적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의 조상 누군가가 음경가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몸은 태곳적부터 수많은 생명들이 자연의 거대한 질서에 발맞춰 진화한 결과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린 모두 소중한 생명이다옹.” [사진출처=NikaJiadze]
<세줄요약>

ㅇ고양잇과 동물 수컷 성기에는 가시가 돋혀있다.

ㅇ암컷과의 짝짓기에서 자궁을 자극해 배란을 촉진하려는 전략이다.

ㅇ대를 잇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이다. 우리 모두가 난고(難苦)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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