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용 컵, 그리고 동감과 참여
최근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23년 기준 약 400잔으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2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평균 소비량의 2배 이상이며, 3위인 미국에 비해서도 25% 이상 많다.
필자도 아침에 연구원에 출근하면 컴퓨터 전원을 눌러 놓고는 책상 한쪽에 놓아둔 머그잔을 씻어 커피를 한가득 담아오는 것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하루 동안 마시는 커피는 평균 2잔,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 3잔까지 되는 것 같다.
한국의 높은 커피 소비량은 바쁜 사회 문화, 높은 접근성, 다양한 커피 종류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결국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은 함유된 카페인을 통해 각성을 촉진해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세부적인 소비 특징을 살펴보면, 국내 소매시장의 경우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조제 및 인스턴트 커피 시장은 축소되는 경향인 반면,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원두커피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다고 한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주문한 커피를 매장에서 마실 것인지, 받아서 갖고 나갈 것인지를 소비자가 선택한다. 그 선택에 따라 각각 다른 종류의 컵에 커피를 받게 된다. 후자인 ‘테이크 아웃’을 선택할 경우 국내 대부분 지역에서는 종이 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는다. 한국은 커피 소비량이 세계적으로 높은 만큼 여기에는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업무를 보러 세종시에 출장을 가거나 가족여행을 위해 제주시를 방문했을 때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 컵, 일명 리유저블 컵이라는 것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 이는 테이크 아웃을 선택했을 때 보증금을 추가로 내고, 커피를 구매했던 매장이나 해당 지역 곳곳에 설치된 무인 회수기에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구조로 돼 있었다.
출장이나 여행 특성상 다회용 컵을 받았던 매장에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적었던 데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회수기를 찾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동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컵을 처리하기 모호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다회용 컵은 제조 전체 과정 및 폐기 단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양을 고려해 본다면, 1회만 사용할 경우 일회용 컵보다 3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때문에 적어도 4회 이상은 재사용돼야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달부터 제주 지역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정책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는 2021년 7월 다회용 컵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시행해 왔는데, 해당 사업을 추진했던 민간 기업이 수거와 세척 등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철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제주도 차원에서도 앞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만 확대 시행한다고 한다.
정책, 특히 환경 정책의 경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일반인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동참이 보장돼야 제도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사례가 아닌가 싶다.
환경을 위한 정책이 하나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향후 더 나은 정책을 발굴하고 자원을 집중한다면 제주의 사라진 다회용 컵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여러 번 쓰는 용기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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