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뢴트겐의 X선 발견보다 앞서 발견한 과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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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내부를 볼 수 있는 빛의 발견
무엇인가가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그 대상이 가시광선의 빛을 발산한 것을 감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빛은 파장을 가지고 있고 그 파장이 약 400~700nm에 속해야 눈에 보인다.
가시광선중에서 파장이 가장 큰 것은 빨간색, 파장이 가장 작은 것은 보라색이다. 빨간색보다 파장이 커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적외선, 보라색보다 파장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를 자외선이라 한다.
프리즘을 이용하여 빛을 분해햐는 연구를 한 뉴턴(Isaac Newton)은 빛이 무지개색으로 구분됨을 알아냈다. 동물 대부분이 빨간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의 파장이 사람이 볼 수 있는 파장의 범위보다 작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라디오 제작에 이용되는 진공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던 학자들은 빛이 차단된 곳에서 진공관 내부 금속 선에서 전자가 튀어 나오면 유리관 벽에 부딪히면서 녹색의 빛을 내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때 유리관에 알루미늄판을 대면 전자는 이 판을 뚫고 지나갈 수 있지만 시안화바륨(Ba(CN)2)을 바르면 전자가 부딪히는 순간 더 밝은 빛이 발생한다.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은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실험 조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해 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뢴트겐은 시안화바륨을 칠한 유리판이 빛나는 것은 미지의 물질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1895년 11월 8일, 뢴트겐이 발견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작은 빛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자 손은 보이지 않고 손의 뼈만 볼 수 있는 현상을 관찰했다. 뢴트겐은 새로운 성질을 가진 빛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무슨 빛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정체불명’을 의미하는 X선(X-ray)이라 이름붙였다.
뢴트겐은 자신의 발견이 얼마나 효용가능성이 높은지를 알지 못했지만 이는 현대물리학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자 과학역사에서 위대한 발견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 첫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뢴트겐
뢴트겐은 1845년 독일의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레네프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때 네덜란드로 이사를 했다. 의류제조와 판매를 하던 사업가 아버지는 뢴트겐이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으므로 정규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고 공장과 사업일을 배우게 했다.
그러나 사업보다 공부에 흥미를 지닌 뢴트겐은 시간이 남는대로 동네에 있던 기관차 차고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계가 움직이는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 또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는 사업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혀 갔다.
결심이 서자 뢴트겐은 아버지에게 사업을 물려받는 대신 공부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뢴트겐이 자신의 뜻과 다름을 몰랐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에 크게 놀랐지만 진지한 아들의 태도를 받아들여 공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우트레히트(Utrecht) 공업학교에 들어간 뢴트겐은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학교생활이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생님과 적절하지 못한 농담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게다가 이 일은 우트레히드대 입학이 불허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공부하기를 원한 뢴트겐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연방 공대(Federal Polytechnic Institute)에 입학을 했다. 여기에서의 공부는 뢴트겐의 지적 욕구 충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유명 물리학자인 쿤트(August Kundt)의 연구실에서 학생 때부터 연구에 참여하여 학자로서의 소양을 키워 갔다.
대학원에서 쿤트의 지도하에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쿤트가 뷔르템브르크대로 옮겨 가자 그를 따라가 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875년에 교수가 된 후 스트라스부르대, 뷔르쯔부르크대, 기센대, 뮌헨대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뷔르쯔부르크대에 재직중에 진공관 속에서 발생하는 전기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 때까지 사람의 힘으로 진공 상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연구가 많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진공이라는 인위적인 상태에서는 물리학의 새로운 지식이 발견되고 활용될 수 있음이 알려지고 있었다.
1894년부터 진공 상태에서 방사되는 여러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뢴트겐은 1895년에 X선을 발견했다. 그 후로 X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그는 'X선의 성질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라는 책을 발간했다.
스위스 의학자이면서 뢴트겐보다는 28세가 더 많은 쾰리커(Albert Rudolph Kolliker)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지를 낀 자신의 손을 촬영하게 하기도 한 사람이다. 그는 ‘미지의 선’이라는 뜻을 지닌 X선에 발견자인 뢴트겐의 이름을 붙여 뢴트겐선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평생 학자로서의 인생을 구가한 뢴트겐은 X선 발견 외에 전류, 자기와 편광, 결정 내에서의 열전도 등 물리학 여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겨 놓았다. 뢴트겐은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 1901년에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1923년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X선 발견의 파급효과
앞에서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 과학역사에서 위대한 발견이라 한 것은 그 파급효과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X선 발견은 의학에서 방사선과 탄생의 계기가 되었고 그 후로 방사선과는 진단방사선과와 치료방사선과로 나누어졌다.
오늘날에는 간암 환자의 혈관을 막아서 간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진단방사선과에서 이루어지므로 영상의학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치료방사선과도 방사선종양학과로 이름을 바꾸어 종양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분야임을 보여 주고 있다.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X선 발견 직후부터였다. 뢴트겐의 업적이 발표되자 이 빛이 원하는 것은 모두 투시할 수 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고 X선 투과를 방지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사람의 마음을 X선으로 찍어서 알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엉터리 이야기는 금세 사라졌고 X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아지면서 X선의 효용가치가 점차로 알려지게 되었다.
문제는 X선의 부작용도 함께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에서는 X선 사진을 보여주는 일을 하던 사람이 피부에 심한 화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하루에 두세시간 X선에 노출되는 생활을 한 결과 피부가 건조해지더니 점차 햇빛에 의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변해 갔고 피부의 위축과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이 탈모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발명가로 유명한 에디슨(Thomas Alva Edison)도 X선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조수 한 명은 자신의 몸을 X선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하던 중 39세에 사망하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영상 촬영을 담당하는 기사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납으로 만든 가운을 착용한다.
X선의 부작용은 초기부터 알려졌지만 소량은 큰 문제가 없음도 알려졌고 효용가치가 크다는 사실도 알려지면서 활용도는 점점 커져갔다. 뢴트겐이 고안한 X선 발생장치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X선을 이용한 연구가 널리 행해져 1년 동안 1000편 이상의 관련 논문과 50권 이상의 관련 책자가 발간될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바꿀 만한 위대한 발견은 그 이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반대 의견에 부딪히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X선은 그 이전에 비슷한 발견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으므로 역사 속에서 신개념이나 신기술이 마주쳐야 했던 많은 저항을 받지 않은 채 골격 검사, 이물질 유무 검사, 인체 내부 장기의 움직임과 모양 검사, 동물학과 식물학 연구 등에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현대의학에서 다리나 팔을 부딪히거나 관절에 충격을 받은 경우 병원에 가면 “일단 사진이나 한 장 찍어 어떤 이상이 생겼는지 봅시다”하는 말이 일상화되어 있을 정도로 X선은 이제 필수기술이 되었다. 화학, 공학, 생물학, 지질학, 광물학 등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X선은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걸 연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사람뼈 사진만으로 나이를 알아낼 수 있고 턱과 이의 사진을 이용하여 누구인지를 식별이 가능한 상태다.
● 최초의 X선 발견자는 누구인가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 따른 우연이라 하기도 하고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과학을 향한 열정에 의한 결과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뢴트겐 이전에는 X선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가?
정답은 “아니다”이다. 뢴트겐보다 앞서서 헤르쯔(Heinrich Hertz), 레너드(Philipp Lenard), 크룩스(William Crookes), 굳스피드(Arthur Willis Goodspeed) 등은 X선이라는 미지의 광선을 먼저 발견했다.
한 예로 1879년에 크룩스는 대기압의 약 100만분의 1정도로 그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진공상태에서 음극에서 튀어나온 방사선이 형광을 발생시키고 자석 곁에서 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를 더 깊이 연구한 헤르쯔는 음극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 파가 얇은 알루미늄관을 통과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레너드는 음극선을 진공관 밖으로 끌어재기 위해 진공관의 유리벽 일부를 알루미늄판으로 갈아끼웠다. 이를 통해 레너드는 음극선과 X선 모두를 얻었으며 뢴트겐은 이 둘을 분리시킴으로써 X선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뢴트겐도 자신의 연구의 바탕이 되는 연구를 한 선배들의 업적을 알고 있었다. 단지 선배학자들이 더 깊이 연구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한 것이 흥미로운 발견의 계기가 된 것이다. 뢴트겐은 19세기 말 독일에서 흔히 그랬듯이 특허를 청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학자들이 X선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뢴트겐은 이렇게 활용도 높은 발견을 해 놓고도 큰 경제적 혜택은 얻지 못했다. 단지 새로 생긴 노벨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상금을 챙겼을 뿐이다.
※ 참고문헌
Gerd Rosenbusch, Annemarie de Knecht-van Eekelen. Wilhelm Conrad Röntgen: The Birth of Radiology. Springer, 2019
Silvanus Thompson. First Presidential Address to the Roentgen Society. Arch Roentgen Ray 1897;2:23-30
J. H. 콤로. 의학사 산책. 박찬웅 옮김. 미래사. 1995
Ray Davies. X-Ray: The Unauthorized Autobiography. ABRAMS Press, 2007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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