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명이 살린 ‘무연고 강아지’ [임보 일기]

남형도 2024. 7. 2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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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

팔랑이는 벚꽃잎과 함께 몽실이의 커다란 세상도 땅에 떨어졌다.

할아버지의 지팡이 궤적을 따라 몽실이의 네 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텅 빈 집에 몽실이 홀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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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2022년 봄. 팔랑이는 벚꽃잎과 함께 몽실이의 커다란 세상도 땅에 떨어졌다. 유일한 보호자인 80대 할아버지가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둘은 단짝이었다. 산책할 때마다 곁을 지켰다. 할아버지의 지팡이 궤적을 따라 몽실이의 네 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동네를 나란히 걸을 때면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해 첫눈을 보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았다. 텅 빈 집에 몽실이 홀로 남겨졌다. ‘무연고 강아지’가 되었다.

김옥례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로 할아버지를 돌봤다. 장례를 마치며 사실 그의 역할은 끝난 거였다. 몽실이를 남겨둔 채 문 닫고 나갈 수도 있었다. 정듦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옥례 할머니가 몽실이를 품에 안았다. 죽을 뻔했던 몽실이가 고비를 한 번 넘겼다. 옥례 할머니가 작은 아파트 한편을 내어주자 몽실이가 곤히 잠들었다. 할머니는 밥과 물을 챙겨주었다. 오래 곁을 내어준 할아버지 만큼은 아니었지만, 몽실이는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할머니 역시 형편이 여의찮았다. 생계를 잇기 위해 집을 오래 비워야만 했다. 혹시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던 할머니는 서울 중랑구청에 연락했다. 사정이 이렇다고, 방법이 없겠느냐고.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었을 때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지자체 보호소로 가면 고작 ‘열흘’이 주어진 뒤 안락사를 당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가 그 길을 간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있었다. 중랑구청 보건행정과 동물정책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가희 주무관은 옥례 할머니 연락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실은 매뉴얼대로 하면 편할 수도 있었다. 예컨대 “보호소로 보내시면 됩니다”라고 하면 됐다. 가희씨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살리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살려줄 곳을 찾기 쉽지 않아도, 쉬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이였다. 기적은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은 돌고 돌아 팅커벨프로젝트까지 닿았다. 팅커벨프로젝트는 보호소 안락사 명단에 있는 유기견을 구조해 치료하고 돌봐주다 좋은 입양 가족을 연결해주는 비영리 단체다. 2013년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구했던 강아지 ‘팅커벨’에서 이름을 따왔다. 팅커벨은 구조 후 하루 만에 파보 바이러스로 숨졌고, 추모는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도 덩그러니 남겨진 몽실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절차가 있었다. 구조 여부를 회원들에게 물어야 했다. 50명이 동의하면 몽실이를 살릴 수 있는데, 세 배가 넘는 155명이 구해달라고 댓글을 남겼다. 이 작은 생명이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수많은 이들이 선물해준 계절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4살이 된 몽실이에게 지난 3월20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영후씨와 은영씨 부부가 몽실이를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영후씨(오른쪽)와 은영씨는 몽실이를 임시 보호하다가 입양했다. ⓒ남형도 제공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몽실이는 새 이름을 얻고 올해 네 번째 봄을 맞았다. ⓒ남형도 제공

임시 보호는 입양으로 이어졌다. 부부의 둘도 없는 가족이 되었다. 몽실이의 새로운 이름은 ‘미나’다. 죽음의 고비마다 기꺼이 품을 내어준 이들은 예상했을까. 여전히 살아서 온기를 나누는 이토록 찬란한 장면을. 처음 와서 짖지도 낑낑대지도 않던 미나가 이제는 제법 떼를 쓴다. 영후씨는 그게 참 좋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기뻤어요. 더는 불안해하지 않고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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