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용사 이름이 호텔로…韓 현대사와 함께한 워커힐 [장수브랜드 탄생비화]

구예지 기자 2024. 7. 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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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개관해 올해로 61주년…월튼 워커 장군 이름 따와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한국 현대사와 궤적 함께해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전경.(사진=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구예지 기자 = 서울 아차산 기슭에 한강을 바라보며 자리한 워커힐 부지는 66만㎡에 달한다.

워커힐은 개관 초기 외화 획득을 위해 주한 유엔군과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현대식 리조트 호텔이었던 워커힐은 올해로 창립 61주년을 맞이했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과 함께했다.

1963년 개관한 워커힐의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

호텔 이름을 '워커의 언덕'이라고 지은 것은 월튼 워커 장군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기 위함이었다.

메인 빌딩, 한국민속관, 호텔, 빌라, 전망대 등 최신 시설을 갖춘 현대식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지니고 주변 경관에 알맞게 분산 배치됐다.

특히 5개 동의 호텔은 더글라스, 매튜, 맥스웰, 제임스, 라이만 등 모두 한국전쟁에 참전한 역대 유엔군의 이름을 붙여 '워커힐'의 의미를 더했다.

개관 행사에서는 재즈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이 방문해 2주간 내한공연을 했다.

이 공연에서 당시 15세의 소녀가수 윤복희가 게스트로 초대돼 암스트롱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함께 노래를 불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선경이 워커힐을 인수하고 쉐라톤과의 협력으로 국제적 규모의 호텔로 성장했다.

1978년 쉐라톤 워커힐이 완공되며 536개의 객실, 72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극장식당과 카지노, 각국 요리 식당 등 세계 정상급의 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 호텔로 면모를 일신했다.

이후 워커힐은 2002년 11월 쉐라톤의 최상위 등급인 그랜드로 승격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로 이름을 변경했다.

신규호텔 아래에 신설된 대형 야외 수영장, 맘모스 수영장.(사진=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워커힐은 자연환경을 이용한 리조트 호텔로서의 기능 강화를 목표로 천혜의 자연환경과 넓은 공간을 활용해 레저·스포츠 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나갔다.

특히 지금은 '리버파크'로 명칭과 시설이 바뀌었지만 4개의 풀에 6열의 슬라이더를 갖추고 동시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수영장 맘모스 수영장과 겨울 스포츠를 위한 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레저 시설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 호텔 최초의 게이트볼장과 테니스장, 골프연습장, 사우나, 조깅코스 등의 시설도 운영함로써 종합 스포츠센터로서의 기능까지 갖췄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인 1988년 VIP맨션(현재 애스톤 하우스)을 개관하며 국제회의 및 국빈 유치에 활용했다.

1989년에는 더글라스 이그제큐티브 클럽을 리노베이션했다.

1989년 호텔 업계 최초로 수펙스(SUPEX) 김치연구소를 설립했고 1994년 워커힐 수펙스(SUPEX) 김치를 론칭해 한식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2001년 포시즌 뷔페를 통해 즉석 조리 코너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오픈 키친을 선보였다.

1960년대 명월관 모습.(사진=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워커힐 내에서 가장 오래 지속해온 식음료 업장 '명월관'과 '피자힐'(과거 힐탑바)은 워커힐의 상징적 공간이다.

1964년 전통 기와집 건축 양식의 독립 건물로 준공돼 한식 전문점으로 영업을 시작한 명월관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한국 전통의 멋과 맛을 소개하기 좋은 곳으로 입지를 다지며 워커힐의 명소로서 자리잡았다.

1960년대 피자힐 모습.(사진=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호텔 최초의 피자 레스토랑 피자힐은 더글라스 하우스와 더불어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씨의 작품이다.

워커힐의 W자 형태의 콘크리트 기둥이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모습으로 워커힐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져 한강 줄기와 광나루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했다.

당시 한국에선 시도한 적 없는 노출식 콘크리트 공법이 적용됐다.

개관 당시에는 전망대이자 6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힐탑바(Hill Top Bar)'로 운영됐고 1988년 피자힐로 바뀌었다.

워커힐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하며 성장해왔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2000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등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이 되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이 방문해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개관과 함께 시작된 워커힐쇼는 국내 유일의 호텔쇼로, 1963년 하니비쇼부터 2012년 꽃의 전설 2가 막을 내릴때까지 48년간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2001년까지 누적 관객 수 594만 명을 돌파했고 당대 최고 수준의 화려한 무대와 기술, 차별화된 콘텐츠로 우리나라 관광산업과 쇼비즈니스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역사성과 상징성으로 회자되고 있다.

워커힐은 럭셔리 웨딩의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스타들의 결혼식을 치렀다.

신성일과 엄앵란, 배용준과 박수진, 현빈과 손예진 등 많은 스타 커플들이 워커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이들의 웨딩 장소인 애스톤 하우스 건물과 야외 정원은 아차산의 풍광, 탁 트인 한강과 어우러진다.

1층은 대형 연회장으로 꾸며져 있고 2층에는 침실, 서재, 응접실, 바를 갖춘 리셉션 룸 등이 마련돼 있다.

외관 타일 붙이기 작업을 끝내고 옥탑 공사중인 현재 '그랜드 워커힐 서울' 모습.(사진=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17년 워커힐은 쉐라톤 브랜드를 종료하고 독자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 '비스타 워커힐 서울', '더글라스 하우스' 등 3개 브랜드로 나뉜다.

워커힐 관계자는 "100년 호텔로 도약을 준비하며 환경과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친환경 호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다양한 시설과 감동적인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텔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nris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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