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서 보니 작년 세수부족 ‘내부거래’로 땜질했다… “올해도 재현될 판”
지난해 국세 수입 56兆나 ‘펑크’났는데…
지출, 56兆 아닌 28兆만 펑크 난 비결은?
추경 편성 없이도 회계·기금간 ‘돌려막기’
“미지급·불용·상환·추가예탁” 변칙 곳곳
타행 적금(외평기금) 헐게 해 목돈을 예치 받은 은행(공자기금)이 이자도, 공과금(여타 회계·기금)도 제때 안 내는 특정인(일반회계)에게 당초 한도보다 더 큰 돈을 빌려줌으로써 자금난(세수 펑크)을 해결해준 격.
한 재정 전문가가 지난해 정부의 재정 운용 메커니즘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역대급 ‘세수 펑크’에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없이 재정을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기금·회계 간 ‘내부 거래’의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구조가 복잡한 데다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최근 재정 전문 기관인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작년에 정부가 돈을 어떻게 돌려 썼는지를 알 수 있는 분석을 내놨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런 ‘땜질’식 대응이 많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지난 18일 발간한 ‘2023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세수 결손 대응 분석’ 내용을 다뤘다. 당초 계획된 것보다 예산을 덜 쓰는 ‘지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으로 칸막이 쳐진 나랏돈을 서로 당겨쓰고 빚지는 방식의 복잡한 내부 거래로 운용해 세수 부족을 메꾼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 작년 결산서 뜯어보니… 회계·기금 간 내부거래 횡행
우리나라 재정은 ‘일반회계’ 그리고 ‘특별회계’와 ‘기금’으로 칸막이가 쳐져 운용된다. 정부가 한 해 각종 사업들을 집행하기 위해 쓰는 돈은 통상적으로 ‘예산’이라고 불리는데, 이 돈은 ‘일반회계’에서 쓰인다. 주로 세금을 걷어 충당된다.
‘기금’이란 특정 목적을 위해 운용된다는 면에서 특별회계와 비슷하지만, 부담금·출연금 등 다양한 수입원을 통해 들어온다는 점, 탄력적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는 현재 외국환평형기금·주택도시기금 등 총 68개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기금 중에는 여타 여유 재원이 있는 회계·기금에서 ‘예금’처럼 돈을 받아 굴려주거나, 부족한 회계·기금에 ‘대출’을 내주는, 마치 정부 내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이 존재한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 펑크를 메꾸기 위해 이 공자기금의 역할을 십분 활용해 일반회계의 주머니를 채웠다. 작년 56조원가량의 ‘세수 펑크’ 발생에도, 계획한 것보다 ‘과소 지출’한 금액이 28조원가량에 불과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① “줄 돈 안주고 미루기”… 일반회계→타 회계·기금 전출금 ‘유보’
예정처 분석에 따르면, 일반회계에는 법정 기준 등에 따라 특정 세입을 다른 회계·기금에 전출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정부는 지난해 이를 상당수 지키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줘야 하는 18조6000억원을 주지 않은 것이다. 지방교부세법 등에 따르면 ‘국세가 줄어드는 경우에는 지방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다음 다음 연도까지 교부세를 조절할 수 있다’, ‘교부세 차액은 늦어도 다음 다음 연도의 국가예산에 계상해 정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지급을 유보한 것이다.
예정처는 이 밖에도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세수와 연계되는 교통시설특별회계로의 전출금은 8조9000억원이 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7조9000억원만 전출됐다”며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지역자율계정으로도 원래 2200억원이 전출돼야 하지만, 1900억원만 전출됐다”고 밝혔다.
② “제때 안 낸 이자”… 일반회계→공자기금 이자 미지급
공자기금은 회계·기금들의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부분 국채 발행을 통해 돈을 마련하고, 이렇게 마련한 돈은 일반회계나 각종 기금에 빌려줄 수 있다.
공자기금은 빌려준 회계·기금으로부터 이자도 받아야 한다. 일반회계는 그간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공자기금에 지급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예정처는 “일반회계의 공자기금 예수(預受) 이자 약 8조6000억원이 불용됐다”며 “단일 불용건으로는 규모가 가장 컸다”고 분석했다.
③ “적금 헐게 만든 은행”… 외평기금→공자기금
정부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외평기금도 헐어서 썼다. 외평기금은 환율이 급등락 위기를 겪을 때 상황에 맞춰 원화나 달러를 팔아,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기금이다.
예정처 분석에 따르면 외평기금은 공자기금에서 빌렸던 돈에 대해 당초 49조8000억원을 상환하기로 계획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64조2000억원을 상환했다. 조기 상환한 셈이다.
또 공자기금은 당초 외평기금에 55조3000억원을 빌려주기로 돼 있었지만, 49조8000억원만 빌려줬다. 예정처는 “이를 통해 공자기금은 19조9000억원의 재원을 추가 확보했다”고 했다.
④ “대출 몰아주기”… 공자기금→일반회계 예탁 규모 확대
이렇게 여력이 커진 공자기금은 돈이 부족한 일반회계에 계획보다 더 많이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됐다. 예정처는 “공자기금은 예산(45조8000억원)보다 더 많은 55조4000억원을 일반회계에 예탁했다”며 “9조6000억원을 일반회계에 추가 예탁한 셈”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예정처는 “일반회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세수 결손 대응 방식을 정리하면, 일반회계 지출 절감분(①+②)과 외평기금으로 재원을 확보한(③) 공자기금이 일반회계에 추가 예탁(④)을 함으로써 총 50조8000억원을 확보했다”며 “이는 국세 수입 결손분(56조4000억원)과 5조6000억원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사업 계획 조정 등을 통해 대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리했다.
◇ “나쁜 빚 양산, 여타 기금 기회비용 발생”… 커지는 비판
예정처는 이런 복잡한 내부거래를 통한 세수 결손 충당 방식이 각종 부작용을 낳는다고 우려했다. 예정처는 “일반회계의 공자기금 예수이자 미지급금에는 가산이자가 적용돼 향후 재정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면서 “외평기금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금융성 채무가 ‘적자성 채무’로 전환돼 국가채무의 질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평기금이 본래 목적과 달리 쓰인 것과 관련해서도 “작년 외평기금은 공자기금 예수 원금의 조기 상환과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 과정에서 원화·외화 재원이 모두 감소했다”며 “이런 방식의 재정 운용이 외환시장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기금·회계들의 기회비용(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한 것의 가치)이 발생함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세수 결손 사태가 유사하게 반복되는 올해엔, 또다시 이런 ‘변칙’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전문가가 보면 복잡한 방식으로,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을 한다’고 국민들을 속인 것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라며 “회계 분식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든, 국채 발행이든 투명하게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고 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작년 유례없이 내부거래 방식으로 세수 결손에 대응한 것은 ‘재정 규율’을 해친 일”이라며 “회계·기금이 목적에 맞게 쓰이지 않고 있다면 이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할 문제이지,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이런 일이 올해 당연하게 반복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참고: 한국재정정보원이 정리한 ‘2023년 회계·기금간 내부거래’ 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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