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씨' 즐기던 '반페미' 청년, 어쩌다 '페미 사상검증' 반대 앞장서게 됐나
지난해 7월 26일, 게임사 '프로젝트문'은 대표작 '림버스 컴퍼니'의 일러스트 담당자와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작업자는 미성년자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 입사 전 삭제했는데,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이를 두고 '페미니스트의 기만행위'라며 항의하자 사측이 발 빠르게 입장을 정리한 것이었다.
이같은 회사의 조치에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 이용자들은 그 해 8월 게임 이용자 단체 'PM유저협회'를 만들고 "계약 종료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으로 인한 부당해고"라고 규탄 입장을 냈다. 더불어 소통창구 마련, 재발 방지 대책 등을 게임사에 요구했다.
프로젝트문은 규탄 활동에 앞장선 3명의 게임 이용자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1년에 걸친 수사 끝에 지난 19일 세 활동가 모두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온라인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프로젝트문 부당해고 사건' 1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서울 강동구 한 카페에서 김민성(21) 게임소비자협회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지난해 PM유저협회 대표를 맡았다 프로젝트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세 명 중 한 명이다. 그는 피소 이후로도 게임업계에서 여성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페미니즘 마녀사냥'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김 대표를 만나 '프로젝트문 부당해고 사건'에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 게임업계의 반복되는 '사상 검증'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들었다.
"나는 반페미 청년 보수였다"
김 대표는 과거의 자신이 현재 본인이 비판하는 일부 극단적 소비자 모습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한창이던 2010년대 자신의 정체성을 '반페미 청년보수'로 규정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저는 스스로를 젊은 보수라고 칭했어요. 대표적인 남성 중심(남초)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를 즐겨 했고요. 구조적 차별을 지적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페미니스트'를 정체성으로 삼았어요. 우리 사회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완벽한 자본주의 사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김 대표의 세계관이 뒤집힌 계기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이었다. 지난 2020년 게임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김 대표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의심하게 됐다. 그는 성차별과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보며 연구를 거듭할수록 포용적인 문화 형성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치관이 변한 뒤 겪은 프로젝트문 해고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는 "이 사건을 소비자의 관점으로 보면, 일부 극단적 사상을 가진 소비자들로 인해 작업자의 노동권이 침해당했는데, 그로 인해 나를 비롯한 많은 소비자들이 본래 기대했던 예술을 소비하지 못하게 된 사건"이라며 "노동자의 권리와 소비자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소비자단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PM유저협회는 지난해 11월 게임업계 전반에서 발생하는 사상 검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게임소비자협회'로 규모를 키웠다. 이후 일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넥슨코리아'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집게손가락이 나왔다는 이유로 여성 창작자를 공격할 때 "영상 속 집게손가락은 혐오표현이 아니"라며 피해자 보호에 앞장섰다. 그는 국회 토론회 등에 소비자단체 대표로 참여해 "일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억지 주장을 모든 게임소비자들의 주장인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넥슨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도 프로젝트문 사건과 맥락이 같아요. 우리나라 최고 반열에 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에 양질의 예술 작품을 제공하는데, 일부 극단적 소비자들의 부당한 요구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작품을 누리지 못하게 된 거예요. 협회는 대다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에서 성명문을 내고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해 '사상' 이유로 징계 못하게 해야"
김 대표는 기업들이 다수 이용자가 아닌 일부 극단 이용자들의 억지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로 "기업의 게으른 소비자 분석"을 꼽았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상주하며 불만을 토해내는 소수 극단 이용자들과 실제 게임의 매출을 책임지는 다수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기업은 소수 극단 이용자들의 정보량이 많다는 이유로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게 김 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반복되는 마녀사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대안 커뮤니티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차별금지법을 바탕으로 입증되지 않는 사상적 논란만을 이유로 기업이 작업자에게 징계를 내리지 못하게 해야 하며, 평등과 포용성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설립을 통해 제도적·문화적으로 마녀사냥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속한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게임업계 사상 검증 규탄을 포함해 지속가능한 게임문화 형성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사단법인 인가 절차를 밟고 있으며, 게임 정책 결정 과정에 보편적인 소비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게임물관리위원회와 소통하고 있다.
김 대표는 "협회의 올해 목표는 우리나라 게임문화의 장애인 접근성을 분석한 자료집을 발간해 게임산업 종사자들과 관계부처에 전달하는 것"이라며 "현재 과잉 대표되는 극단적 이용자들이 아닌,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다수 게임 소비자들을 대표해 건강한 게임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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