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검객’ 오상욱 금메달... 개인전 그랜드슬램 신화 썼다
한국 사브르의 간판 오상욱(28·세계랭킹 4위)이 펜싱 종주국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 애국가를 울렸다.
오상욱은 27일(현지 시각) 그랑 팔레에서 펼쳐진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랭킹 14위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대11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2020 도쿄 대회 단체전 우승 멤버였던 그가 획득한 올림픽 두 번째 금메달. 상위 랭커들이 대거 탈락한 이변의 무대에서 오상욱이 최고의 검객이 됐다.
이날 결승전에서 오상욱은 페르자니를 맞아 선제점을 뽑아냈다. 연이어 공격이 성공하며 3-1. 하지만 페르자니의 반격이 성공하며 3-3 동점이 됐다.
위기에 몰린 오상욱은 막고 찌르기로 4-3을 만든 뒤 기세를 올리며 8-4로 점수를 벌렸다. 그는 2년 전 수술을 받은 오른 발목을 어루만지기도 했지만, 흔들림 없이 상대를 압박했다.
휴식을 취한 뒤 재개한 경기에서 오상욱은 연속 득점을 기록, 10-4로 승기를 굳혔다. 쉴 새 없이 공격을 몰아치며 스코어는 14-5로 벌어졌다. 하지만 페르자니가 6점을 따라왔다.
오상욱은 14-11로 앞선 상황에서 공격을 적중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오상욱의 포효가 그랑 팔레를 가득 채웠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한국 사브르에서 개인전 금메달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김정환이 2016 리우와 2020 도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바 있다.
오상욱은 이번 금메달로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랜드슬램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석권한 것을 뜻하는데 오상욱은 2019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2019 지바, 2024 쿠웨이트시티 아시아선수권에서 개인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종목과 남녀를 통틀어 한국 펜싱 사상 첫 대기록이다.
서양 선수에 결코 밀리지 않는 큰 키(192cm)를 자랑하는 오상욱은 한국 사브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타다. 사브르는 머리와 양팔을 포함한 상체만 공격할 수 있으며,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한 종목. 삼 형제 중 둘째인 그는 형 오상민(30)씨를 따라 대전 매봉초 6학년 때 펜싱에 입문했다.
3형제 모두 키가 185㎝를 넘는데, 그중 가장 큰 오상욱은 어렸을 땐 형보다 몸집이 훨씬 작았다. 중1때까지는 160cm 초반으로 또래보다 작았던 그는 송촌고에 진학할 당시 187cm까지 컸고, 고 1 때 190cm를 넘었다.
오상민씨는 “동생이 어린 시절 부족한 체격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더 빠르게 스텝을 밟는 등 기본기 훈련에 매달리며 스피드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런데 키가 갑자기 크면서 피지컬과 스피드를 모두 갖춘 무시무시한 선수가 됐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대전에서 나온 토박이.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대전 지역 지도자와 체육인, 교사 등으로 이뤄진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높이뛰기 스타이자 친구인 우상혁이 함께 장학금을 받은 사이다.
오상욱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때마다 자신의 모교에 기부금을 내는 이유다. 운사모 회원으로 꼬박꼬박 후원금도 낸다.
2014년 한국 사브르 최초로 고교 국가대표가 되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증명했던 오상욱은 긴 리치(205cm)와 다리를 활용해 깊게 찌르고 베는 기술로 2018-2019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랭킹 1위에 오르며 일찌감치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도 능해 수세에서도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서양 선수들은 세계 무대를 휩쓰는 이 젊은 검객을 ‘괴물(monster)’이라고 부르며 경탄했다.
그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코로나에 걸려 7kg 이상이 빠지며 고전했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김정환과 구본길, 김준호와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그때 한국 대표팀에 붙은 별명이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 외모까지 빼어난 어벤저스 막내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단체전에선 시상대 맨 위에 올랐지만, 개인전에서는 산드로 바자즈(조지아)와 8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1점을 잃으면서 13대15로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긴 채 3년 후를 기약했다.
도쿄 이후 파리로 오는 동안 시련이 많았다. 2022년 12월엔 연습 경기 도중 실수로 상대 발을 밟아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다. 바깥쪽 인대 두 개는 완전히 끊어졌고 하나도 50% 이상 손상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펜싱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큰 부상.
수술 후 힘든 재활 과정을 이겨낸 오상욱은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부활을 알렸다.
올해 초엔 상대와 부딪치며 칼을 잡는 오른 손목 인대를 다쳤다. 깁스를 하고 한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다. 올림픽 준비를 위해 진천선수촌으로 들어가기 전 기자와 만난 오상욱은 “한창땐 공격이 잘 안돼도 ‘계속 막아봐. 내가 뚫어줄게’ 하며 더 세게 때렸는데 최근엔 공격이 막히면 그쪽을 피해 다른 곳을 노려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형이 그 모습을 보고 ‘승부를 회피하지 말고 내가 알던 동생으로 돌아오라’고 따끔하게 얘기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맘 먹고 때리면 상대는 못 막는다는 생각을 하니 펜싱이 쉬워졌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은 오상욱은 지난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정상에 오르며 파리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리고 유서 깊은 그랑 팔레에서 그랜드슬램 달성이란 대기록 수립과 함께 세계 최고 사브르 선수로 우뚝 섰다.
“펜싱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좀 더 꿈이 커졌다. 스포츠 선수 하면 떠오르는 이름 중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오상욱이 한국의 스포츠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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