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아파트 ‘반값 떨이’... 리카싱, 中부동산 추가 하락에 베팅
청쿵실업, 광둥성 둥관 골프 빌라 30가구 50% 할인 분양
중국 부동산 시장이 7월 들어 홍콩 부호 리카싱(李嘉誠·96)의 ‘반값 아파트’ 분양으로 술렁이고 있어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광둥성 둥관(東莞)의 한 골프장 옆 빌라형 아파트 30채를 50% 할인한 가격에 내놓아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리 회장은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 홍콩에서 시세보다 30%나 싼 가격에 고급 아파트를 잇달아 분양해 화제를 모았죠. 이번에는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 더 파격적인 할인으로 미분양 아파트 떨이에 나섰습니다.
리카싱 회장은 10년 앞을 내다보는 투자로 유명하죠. 늘 시장의 흐름을 한발 앞서 가서 ‘풍향계’로 통합니다. 중국 내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도 반값 아파트 행렬에 가세한다면 중국 부동산 가격 하락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중국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부동산 시장 추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리 회장이 한바탕 찬물을 끼얹어 버린 셈입니다.
◇풍광, 교통 좋은 골프장 빌라
반값아파트가 나온 곳은 둥관 남부 하버 플라자 골프클럽 옆에 있는 ‘하이이하오팅(海逸豪庭)’이라는 빌라 단지로 리카싱 회장이 창업한 홍콩 청쿵(長江)실업이 개발한 곳이에요. 이 아파트 분양대행업체는 7월5일부터 14일까지 이 단지 잔여 물량 30가구를 ㎡ 당 1만4000위안(약 270만원) 전후의 가격에 분양했습니다. 69㎡의 소형 평형부터 125㎡의 중대형까지 다양한 평수의 물량이 나왔는데, 저층이나 꼭대기 층이 많았다고 해요.
중국 매일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아파트 단지의 지난해 신고 분양가는 가장 싼 가구가 ㎡당 3만1000위안(약 6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현지 부동산 업계는 그동안 ㎡당 2만4000~2만7000위안 정도에 분양해 왔다고 했어요. 청쿵실업이 이번에 내놓은 가격은 여기서 거의 50%를 할인한 겁니다.
올 상반기 둥관의 평균 주택 거래 가격은 ㎡당 2만6600위안으로 작년 동기 3만2200위안에 비해 17%가 하락했다고 해요. 거래량도 작년 동기보다 39%가 줄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폭락장이라고 할 수 있죠. 청쿵실업이 내놓은 분양가는 올 상반기 둥관 주택 평균 거래가와 비교해도 53%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빌라단지는 둥관 도심에서 남쪽으로 11㎞가량 떨어져 있지만, 인근에 하버 플라자 골프클럽, 헝강 저수지 등이 있어 풍광이 좋은 곳입니다. 광저우~선전고속도로가 옆을 지나가고 지하철 노선도 들어와 있어 교통도 괜찮은 편이라고 해요. 그런데도 청쿵실업은 50% 할인한 가격에 잔여 물량을 모두 소화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홍콩선 30%, 대륙선 50% 미분양 떨이
청쿵실업이 이 일대 토지를 사들인 건 1998년이라고 해요. 20여년에 걸쳐 장기간 개발하면서 이곳에 아파트와 빌라 등 총 602가구를 지어 분양했다고 합니다. 부지를 사들일 당시 둥관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당 2250위안 수준으로, 중국 매체들은 1만4000위안에 팔아도 밑지는 가격은 아니라고 썼더군요.
홍콩 전문가들은 할인 규모가 크긴 하지만 가격을 낮춰 재고를 소진하기 위한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봤습니다. 중문대 리자오보 교수는 “수십년 동안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른 중국 대륙에서는 낯설겠지만, 시장이 안 좋을 때 가격을 낮춰 재고를 처분하고 현금을 확보하는 건 청쿵실업이 자주 써온 방식”이라면서 “중국 부동산업계에 시범을 보여준 셈”이라고 했어요. 산둥대 출신 경제학자 스링은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서 “청쿵의 가격 인하가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적잖은 부동산 업체들이 이를 모방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청쿵그룹은 작년 8월 홍콩 주룽반도 오션뷰 아파트 132가구를 시세보다 30% 싼 가격이 분양해 홍콩 시장을 놀라게 한 적이 있죠. 올 4월에도 홍콩섬 남부 웡척항 인근 아파트 422가구를 30% 할인한 가격에 내놓아 부동산 시장 불황 속에서도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중국서도 “지혜로운 선택” 평가
둥관은 광둥성을 대표하는 제조업 기지로 한때 우리나라 기업 100여곳이 이곳에 생산기지를 두기도 한 곳이에요. 광저우, 선전 등 광둥성 내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지만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대도시입니다. 이런 곳에서 잔여 물량이라고 해도 50% 할인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건 중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그만큼 어둡게 본다는 뜻이겠죠. 중국 부동산 시장이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는 쪽에 베팅을 한 겁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리카싱 회장의 반값아파트 분양을 전하는 메시지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리 회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댓글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나 부동산업체보다 ‘시장 풍향계’라는 리카싱 회장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는 거죠. 리카싱 회장은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2013년부터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내 주요도시의 상업용 부동산을 대거 매각했습니다. 4년간 팔아치운 부동산 대금이 13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하죠. 그 이후에도 다롄 시강산 개발 부지를 40억 위안(약 7600억원)에 넘기는 등 중국 내 부동산 프로젝트를 속속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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