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의 미장센,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우산
영화 ‘늑대의 유혹’이 남긴 전설의 강동원 우산신. 그 이후, 2024년 최고의 화제작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역대급 명연출 우산신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산’하면 추억되는 영화 ‘쉘브르의 우산’이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있다. 그렇게 우산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잊지 못할 미장센을 연출해주는 소품이 되어 왔다.
패션신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산은 스타일의 특별한 패션 액세서리이자 미장센이 되어준다. 단 하나의 우산만으로 스타일리시한 룩을 완성시킬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우산은 비를 막아주기 위해 탄생했지만, 단지 그 기능적인 목적만으로 사용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산의 기원은 중국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햇빛을 차단하는 목적만을 가진 양산의 기원은 4천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현재의 우산 형태는 1705년 파리의 상인 장 마리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부분으로 접을 수 있고 중앙 막대의 연결 장치를 통해 금속 우산살이 접혀 올라가는 형태로, 휴대용으로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우산은 특히 세련된 멋쟁이들이 많았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여성을 비로부터 보호하는 여성용 액세서리로 여겨졌다. 비가 자주 오는 영국 날씨 환경 때문에 영국 남성들이 18세기에 걸쳐 점차 우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때 유명한 조나스 한웨이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러시아와 극동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였는데, 우산이 여성들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30년간 매일 우산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를 비웃던 남자들이 점점 우산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우산은 영국 신사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영국에선 우산을 ‘한웨이(Hanway)’라 불렀다.
18세기 유럽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우산의 인기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프랑스 혁명 기간에 우산이 패션 액세서리로 여겨지며, 장인들이 우산 손잡이를 예술적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고급 우산은 곧 부와 신분의 상징이 됐다. 19세기가 되며 우산은 다기능화 되기도 했었다. 우산에 조명, 시계, 향수 보관함 등 다양한 목적의 물건들이 장착됐다. 현대의 접이식 우산은 1928년 독일의 엔지어니 한스 하우프트에 의해 발명됐다. 한국에는 구한말 개항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됐다. 1950년대까지 부유층의 상징물이다 60년대부터 대중화됐다.
우산은 그렇게 태생 자체가 ‘럭셔리’였다. 모자, 장갑, 구두, 백을 완벽하게 매치시켰던 1950년대 ‘레이디라이크’ 룩에서 우산 또는 양산은 필수 패션 액세서리였다. 길어진 여름 장마 동안, 우산도 스타일의 완성이라고 여긴다면 뭔가 특별한 디자이너의 터치가 들어간 우산에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우산 하나로 비 오는 날의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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