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메달 아이콘'이 된 '사격 집안' 박하준-'메달 선물' 약속 지킨 '엄마 선수' 금지현[파리STORY]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박하준(KT)은 '사격 집안' 출신이다.
현재 사격 선수로 활약 중인 셋째 누나인 박하향기를 따라 총을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장점인 집중력을 살리고자 사격을 시작했는데, 곧바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전국 상위 클래스를 과시한 박하준은 전국체전을 석권했고, 2022년 처음 나선 월드컵 대회에서도 2관왕에 올랐다. 올림픽 기대주로 급부상한 박하준은 지난 3월 열린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금지현(경기도청)은 2000년생이지만, 벌써 '엄마 선수'다.
2022년 10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을 앞두고 임신사실을 알게 됐고, 작년 5월 딸을 출산하기 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대회에 나서 파리 올림픽 출전권까지 얻었다. 첫 올림픽 출전에 성공했다. 영상 통화로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올림픽에 집중한 금지현은 지난 5월 월드컵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했다.
박하준과 금지현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박하준-금지현은 27일(한국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 금메달 결정전에서 12대16으로 중국에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하준-금지현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은메달로 안겼다. 박하준-금지현은 본선에서 631.4점으로 2위에 오르며 금메달 결정전에 올랐다.
한국 사격은 그간 올림픽 첫 메달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고생' 여갑순이 공기소총 10m 여자 경기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겼고,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도 당시 고교생이었던 강초현이 같은 종목에서 의외의 은메달로 1호 메달을 수확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와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사격 황제' 진종오가 공기권총 10m 남자 경기에서 각각 은메달, 금메달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사했다.
이번에는 공기소총 혼성 10m 경기에 기대를 걸었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출전하는 종목 가운데 시간상으로 가장 먼저 메달이 결정되는게 바로 공기소총 혼성 10m 경기였다.
단순히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노리는 한국 사격은 최근 선수들의 상승세를 감안, 공기소총 혼성 10m 경기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승부수를 띄웠다. 박하준과 금지현 조합을 꾸렸다. 당초 남자 소총 에이스인 박하준과 반효진(대구체고)이 짝을 이룰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험이 풍부한 금지현이 현지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전격적으로 멤버를 바꿨다. 둘은 지난 2022년 바쿠월드컵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바 있다.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는 파리올림픽에서 규정이 바뀌었다. 스테이지 1차전에서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가 각각 30발씩 쏴서 합산 점수가 높은 8개 팀이 2차 본선에 진출하고, 스테이지 2 기록을 통해 금메달 결정전과 동메달 결정전을 실시했던 도쿄 대회와 달리, 스테이지 1 한번으로 금메달 결정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지난 도쿄 대회 당시에는 권은지-남태윤 조가 스테이지 1에서 2위에 올랐다. 파리 규정 대로라면 금메달 결정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스테이지 2에서 3위에 머물며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 바 있다.
바뀐 규정을 톡톡히 봤다. 박하준-금지현은 631.4점을 기록하며, 632.2점을 쏜 중국조에 이어 2위로 금메달 결정전에 올랐다. 박하준-금지현은 10발씩 쏜 1시리즈에서 합계 211.1점으로 1위로 치고 나갔다. 2시리즈까지 합계 421.3점으로 줄곧 1위를 지켰으나, 마지막 3시리즈에서 중국에 역전을 허용해 631.4점으로 본선을 마쳤다.
금메달 결정전은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메달 결정전에서는 남녀 선수가 한 발씩 격발한 뒤 점수를 합산해 높은 팀이 2점을 가져가고, 낮은 팀은 0점에 그친다. 동점이면 1점씩 나눈다. 이런 방식으로 16점에 먼저 도달하는 팀이 승리하는 규정이었다.
박하준은 기분 좋은 '메달의 아이콘'이 됐다. 박하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공기소총 10m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사격 선수단에 대회 첫 메달을 안겼고, 해당 종목 개인전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는 이은서(30·서산시청)와 짝을 이뤄 동메달을 합작했다. 박하준이 포문을 연 사격은 항저우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 무려 14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박하준은 완벽주의 때문에 결전지 샤토루에 도착한 뒤에도 맹훈련을 이어가 한때 컨디션 저하로 고전했다가 최근 다시 페이스를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에 든든한 우군도 왔다. 가족이 응원을 위해 파리를 찾았다. 박하준의 아버지 박종균 씨는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이 올림픽 국가대표가 돼서 기특하다. 열심히 훈련했으니 본인 실력만큼 마음껏 펼치고 왔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박하향기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동안 노력만으로도 자랑스럽다. 같은 선수로 하준이의 기량은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안다"고 선전을 기원했다. 박하준은 메달로 응원에 보답했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사격을 시작한 금지현은 출산 전에는 '만삭의 총잡이', 출산 후에는 '총을 든 엄마'로 유명했다. 출산은 곧 경력단절로 인식되는 스포츠계에서 금지현은 좋은 롤모델이 됐다. 출산 후 슬럼프가 찾아왔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극복했다. 주말마다 아이를 돌보러 울산까지 왕복 700km를 직접 운전해 달려가던 금지현은 "최고의 엄마 선수가 되고 싶다. 딸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는 약속을 지켰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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