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때와 달리 선조치 확보…한일관계 '사도광산' 고비 넘어(종합)

이상현 2024. 7. 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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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15년 군함도 교훈삼아 '행동 담보' 주력…전시시설 내일 개관
日대표, '강제 노동' 명시적 언급없이 "그동안 약속 명심"…진정성이 관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모습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27일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중 하나인 한국 정부가 이에 동의했기에 가능했다.

정부는 일본의 말만 믿었다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교훈을 살려 이번엔 일본의 선조치를 관철했다.

이로써 한일은 일단 '사도광산'이라는 고비를 넘기게 됐지만, 일본이 현장에 설치한 한국인 노동자 관련 시설의 운영과 매년 하기로 한 추도식이 얼마나 진정성있게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역사 반영 안되면 반대" 배수진…"어음 아닌 현찰" 선조치 관철

2021년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 문제는 한일 간에 갈등요인으로 부상했다.

특히 2015년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을 등재할 때와 여러모로 비슷해 한국은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과의 협상 끝에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일본이 비슷한 시설을 또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엔 일본과의 협상에서 군함도 때와 같은 '약속'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웠다. 외교 소식통은 "'어음'이 아닌 '현찰'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일본과 협상은 물론 한일을 제외한 세계유산위원회 19개 위원국의 주한대사관, 본국 정부, 유네스코 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해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은 가혹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전체 역사'가 반영되지 않으면 사도광산이 등재돼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설득 작업을 이어갔다.

정부는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세계유산위원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관례인 컨센서스 방식이 아닌 표결에 들어가는 건 한국이나 일본 모두에 부담이었다.

한일은 관계 개선의 흐름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공동 인식에 따라 '전체 역사 반영'에 대해 협상을 이어갔고, 그 결과로 한국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사전 설치와 노동자 추도식 매년 개최를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뤘다.

사도광산에서 2㎞ 정도 떨어진 기타자와 구역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된 전시시설에는 ▲ 노동자 모집·알선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음을 설명하는 패널 ▲ 임금 채무 기록 ▲ 한국인 노동자 노동쟁의 기록 ▲ 일본 총리 과거사 관련 발언("마음 아프게 생각") 등과 같은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시실의 자료들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획 자체가 한일 간 협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시 시설은 유네스코 등재 결정에 앞서 설치돼 등재 이튿날(28일) 곧바로 일반에 공개된다. 군함도 때와는 달리 '행동'이 담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도광산 노동자 미지불 임금 채무조사 관련 자료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제 노동' 명시적 언급 없어…전시시설·추도식에 '진정성' 담길지 주목

하지만 '강제성'이 일본 측 전시물이나 추도식 개최 과정에 얼마나 부각될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의 일본 대표 발언이나 관련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확인된 전시물에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노동'에 처했었다는 명시적 표현은 없다.

전시물에 '국가총동원법·국민징용령의 한반도 시행', '노동자 모집·알선에 조선총독부가 관여', '1944년 9월부터 징용이 시행돼 노동자들에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고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음' 등의 내용만 담겼을 뿐이다.

다만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 회의에서 "모든 관련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 정부 대표단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있었다'고 발언하고, 이 내용이 등재 결정문에 반영됐는데 이를 '명심'하겠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에 정리됐다"며 "당시 합의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일본이 그것을 포함해 모든 약속을 인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결국 '강제'(forced)라는 표현의 유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지난 약속에 대한 재확인 방식으로 취지를 살리고, 전시 내용에도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협상이 이뤄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가노 대사가 이전의 약속을 '명심'하겠다고 밝히면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군함도 정보센터에도 보완 조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전시실이 마련된 박물관의 위치나 규모가 당시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대중에 효과적으로 보여주기엔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도광산에는 새로 지은 기념관이 있음에도 유산 구역 밖인 오래된 지역 민속박물관이 전시 시설로 선택됐다고 비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키라리움 사도, 사도광산 텐지 뮤지엄 등을 모두 비교 검토해 장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은 조선인 기숙사 터에 가깝고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했던 기타자와 부유 선광장 인근에 있다"면서 "과거 일본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건물이었고, 사도광산 관리사무실이기도 했던 곳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가혹한 생활을 했다는 자료를 전시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키라리움 사도 역시 유산 내 지역이 아니고, 텐지 뮤지엄은 협소한 자료관으로 전시물 설치에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도광산 노동자 도시락통 실물 모습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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