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빠진 사도광산 전시실 여기…보고도 합의?

신형철 기자 2024. 7. 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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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향토박물관 일부 공간에 설치
정부 “기숙사 터와 가까워…전시 자체 의미”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2층 D전시실 일부(파란색 동그라미)에서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 제공

27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46차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위원국들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만장일치로 동의해 안건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기록된 전시물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하고 추도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인이 강제동원 됐다는 사실이 전시 자료에 빠져있고, 자료가 있는 박물관 또한 세계유산 등재 지역이 아닌 인적 드문 외곽이어서 ‘구색만 갖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약속한 내용은 크게 △사도광산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 설치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기타자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 범위에서 제외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외에도 가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전시 시설 개발하고,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bearing in mind)하며, 한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먼저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물은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됐다. 일본 정부는 당장 28일부터 전시물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전시물에는 “전시에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및 기타 관련 조치들은 한반도에서 시행됐다.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관여하에 ‘모집’, ‘관 알선’이 순차적으로 시행됐고, 1944년 9월부터는 ‘징용’이 시행돼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고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명시했다. 또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바위 뚫기, 버팀목 설치, 운반과 같이 갱내 위험한 작업을 더 많이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노동 조건에 대한 분쟁과 식량부족, 사망사고에 대한 기록도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한 달 평균 노동일이 28일이었다는 기록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탈출과 수감 기록도 있다”고 적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물이 설치된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모습. 외교부 제공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은 올해부터 매년 7~8월께 사도 현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올해 개최 일자와 장소는 현재 일본 내에서 조율 중이며 한국 정부와도 협의 중이다. 해당 추도식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가하는 데, 고위급 인사가 참석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전체 역사가 반영된 전시물이 설치된 것에 대해 “반드시 ‘전체 역사’가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에 관련 자료를 제공해 왔으며, 이러한 입장이 이코모스의 보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반영된 것이 상기와 같은 일본의 조치를 이끌어낸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자평했다. 또한, 사도광산 추도식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본의 민간단체 차원의 추도식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이 약속한 추도식은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기타자와 산업시설이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근대의 산업시설이라는 이유로 이번에 등재된 세계유산의 범위에서 제외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정부의 분석처럼 한국 정부가 일본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낸 것은 평가할만 하다. 다만, 이번에도 일본은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세계유산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물을 설치하는 등 ‘형식을 갖추는 데 그쳤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오래된 2층짜리 민속박물관으로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이 중 한개 방의 절반 면적에 조선인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전시했다. 전시실이 지나치게 허름하고 외곽이라는 지적에 외교부 당국자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당시 한국 노동자들과 가장 관련이 있는 장소인 기숙사 터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며 “해당 박물관은 사도광산의 관리사무소였던 곳으로 이런 장소에 한국인 노동자 관련 사실들이 전시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일본은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 탄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전력이 있는 만큼, 추도식 개최 등의 공약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행할 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다시 한 번 한국이 저자세로 일본에 동조하면서 앞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유산에 대해 목소리를 낼만한 명분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합의에 대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에서는 합의를 추켜세우고 있지만,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정부의 방식은 과거 군함도 때와 다르지 않다”며 “내년으로 보류를 유도해 시간을 가지고 더 협상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서둘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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