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예수’가 과묵한 친구를 만났을 때, 《데드풀과 울버린》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4. 7. 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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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 구원 카드’ 쥔 데드풀의 세 번째 영화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인정하자. 관객은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더는 관대하지 않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눈부신 영광을 끝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디즈니+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MCU 시리즈가 쏟아졌다는 점도 영향이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가 2019년 20세기폭스를 인수한 후 각 회사가 쥐고 있던 판권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MCU 세계관이 한층 확장됐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다수의 영웅 서사와 긴 시간의 틈새를 메우는 각종 시리즈까지, MCU는 포화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 마블 코믹스 전체의 세계관 안에는 이 자가당착을 지적할 수 있는 강력한 내부자가 하나 있다. 거침없는 19금 유머, 흥과 '똘끼'의 강력한 결합을 장착한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이다. 《데드풀》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 세계관 안에서 가장 시끄러운 히어로와 가장 과묵한 뮤턴트를 콤비로 묶어둔다. 이건 썩 괜찮은 만남일까,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일까. 미리 경고부터 하자면 이 영화, 귀만큼 눈까지 시끄러워지는 기분이다. 《데드풀》 시리즈에 대해 원하고 이미 익숙해진 딱 그 정도의 반가운 소란함이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웬만해선 데드풀의 입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울버린(휴 잭맨)을 이미 떠나보냈다. 그것도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방식으로. 《로건》(2017)은 할리우드 장르의 모태나 다름없는 서부극의 DNA를 가져와 슈퍼히어로 영화에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확장을 보여준 작품이다. 울버린은 자신의 이름인 로건으로 돌아가 영웅의 고단함을 내려두고, 다음 세대를 향한 희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뭉클하게 퇴장했다. 그리고 슈퍼히어로의 모범적 퇴장을 보여준 이 영화는…파묘당했다.

이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데드풀은 울버린의 무덤을 파헤치며 등장한다. 그러곤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의 우려를 정확히 겨냥한 회심의 한마디를 날린다. "아마 궁금할 거야. 《로건》의 추억을 더럽히진 않을지." 그리고 이어지는 최후통첩. "더럽힐 거야." 꼭 그렇게 숭고하게 죽어야만 했냐며 울버린을 원망하기까지 하는 데드풀은 이내 엔싱크의 《Bye Bye Bye》에 맞춰 잔망스러운 춤을 추며 울버린의 뼈로 적들을 일망타진한다. 피비린내 물씬한 살육의 현장에서 감지되는 기이한 코믹함. 익숙한 기시감이 몰려온다. 맞다. 데드풀은 이런 영웅이었다.

데드풀이 울버린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간변동관리국, 즉 TVA가 데드풀을 소환한 것이다. TVA는 그간 MCU 전반에 도입된 수많은 멀티버스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조직이다. 데드풀이 사는 세계의 '주축 인물'인 울버린의 죽음으로 인해 그 세계는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자신의 세계가 종말을 맞는 것을 막아야 하는 데드풀은 이미 육신이 사라진 로건 대신 평행우주 속 다른 울버린을 데려와 그의 자리를 대체하고자 한다. 영웅이 될 기회를 주겠다는 TVA의 제안에 데드풀은 예의 제4의 벽(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깨고 카메라까지 부순 후 일갈한다. "폭스 씨X 새끼들아. 나 디즈니랜드(마블) 간다."

《데드풀과 울버린》 속 데드풀은 어쩌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바람, 그러니까 MCU에 속하고 싶었으나 복잡한 판권 문제로 인해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20세기폭스 표 히어로'의 욕망이 거침없이 투영된 캐릭터로 보인다. 그리고 레이놀즈가 슈트를 입은 첫 순간부터 데드풀은 지금까지 그런 캐릭터를 담당해 왔다. 실제와 영화 속 캐릭터를 넘나드는 건 데드풀에게만 허용된 영역이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그 점을 십분 활용한다. 마블 영화들의 심각한 자가 복제와 부진을 낳았던 핵심 소재인 멀티버스, 즉 평행우주를 서사에 활용하면서도 뼈아픈 자성을 유머에 녹여 내기도 한다. "멀티버스는 그만해! 실패를 했으면 고쳐야지." 그간 MCU를 지켜본 관객들의 속마음은, 착한 말만 하는 '나이스풀'을 비롯해 여러 모습으로 변형된 수많은 버전의 자신을 본 데드풀의 절규로 기어이 발화된다.

'망한 히어로'들이 말하는 것

데드풀과 울버린은 자가 신체 회복 능력이 있다는 공통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반대인 캐릭터다. 친해지기는커녕 온갖 무기로 서로를 난도질하기 바쁠 정도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데드풀과 달리, 그가 찾아낸 '최악의 울버린'은 영웅이 되는 데는 관심이 없으며 그저 지난날을 후회하며 비통함에 빠진 뮤턴트다. 상처와 자기혐오로 가득 찬 외로운 영웅. 그것이 울버린의 본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이 한 팀을 이뤄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말하자면 이건 '낙오자들의 여정'이다. 어벤져스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으로 가득한 데드풀과 술독에만 빠져 있는 울버린. 그들은 각 평행세계에서 버림받고 쓸모없는 존재들이 가는 폐기처리장인 '보이드'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자신들의 운명과 비슷한 이들을 만나 일종의 2군 리그를 형성한다.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판타스틱 4》 시리즈의 조니(크리스 에반스), 엘렉트라(제니퍼 가너),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 갬빗(채닝 테이텀)까지 마블 세계관의 아픈 손가락 같은 비운의 영웅들이 뭉쳐 빌런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에 맞서 세계의 종말을 막으려는 것. 《데드풀과 울버린》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가 성공했는가.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데드풀이 어벤져스 같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꿈꿨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완전히 망해 버린 슈퍼히어로 영화도 많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들은 여전히 영웅이다. 그리고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모두 중요한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많은 인원이 참여해 일궈낸 결과물이다.

그 지점을 건드리는 《데드풀과 울버린》은 못내 뭉클한 구석이 있다. 《엑스맨》 시리즈를 중심으로 20세기폭스가 제작했던 마블 코믹스 영화들이 일군 영광의 순간들과 비하인드 영상을 엮은 몽타주가 등장하는 엔드 크레딧 시퀀스에 이르면, 이 수다스러운 영화가 이미 죽은 영웅의 무덤까지 파헤쳐가며 전달하려 했던 진심이 무엇인지 감지된다.

울버린은 러닝타임 내내 시끄럽게 까불고 잔망스러운 데드풀 곁에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그가 엑스맨의 일원임을 의미하는 노란색 코스튬을 입고 전투에 나서는 순간, 그가 만드는 서사적 무게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상징적 의미를 그대로 이식한 결과임이 증명된다.

부조화인 듯 조화로운 두 캐릭터의 어울림은 섣불리 다음을 약속하지 않는다. 《데드풀과 울버린》 한 편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이 안에서 마무리되는 깔끔한 봉합을 보여준다. 끝도 없는 쿠키 영상들을 통해 늘 '다음'을 줄기차게 예고했던 MCU 영화들의 전철을 밟는 대신 관객들의 피로감을 줄여주는 선택이다. 이쯤 되면 데드풀의 과장된 장담이 예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내가 마블의 예수야!" MCU를 구원할 카드는 뜻밖의 히어로가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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