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조선인 강제동원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됐다···군함도 때처럼 약속 안 지키면?

곽희양 기자 2024. 7. 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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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와 산업시설은 등재에서 제외
일본 측 대표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
군함도 때처럼 ‘또 뒤통수 맞을까’ 우려도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의 모습. 정혜경씨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던 일본의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라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권고를 일본이 이행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믿어준 덕분이다.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는 일부 시설물이 이미 설치됐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하시마섬) 세계유산 등재 당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또 다시 협조해 준 것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키로 최종 결정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21개 회원국은 등재에 모두 동의했다. WHC는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하면 찬·반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은 지난해 2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등재 시기는 에도시대(1603~1868)로 한정했다. 이를 두고 1939~1945년 당시 조선인 1500~2000여명이 강제동원된 역사를 지우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6월 WHC의 자문기구는 등재 보류를 권고했다. WHC 측은 강제동원이 포함된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알리는 시설물을 설치하고, 에도시대와 관련 없는 기타자와 산업시설을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명목상으로는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서 세계유산에 오르게 됐다.

일본은 WHC 결정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라며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bearing in mind)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WHC 결정문의 각주에 포함됐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전경. 이 박물관에는 5개 전시실이 있고, 한 전시실의 절반이 되는 공간에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된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일본이 약속한 건 세 가지다. 우선 사도광산의 관리사무소였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에 강제동원 관련 전시를 하기로 했다. 1000여명 이상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인보다 위험한 일을 더 많이 했으며, 한 달 평균 28일을 일하면서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기록물이다. 이 내용은 박물관 홍보 브로슈어의 ‘별지’에도 담긴다.

일본은 또 조선인 노동자의 기숙사·공동취사장 터에 안내판을 세우기로 했다.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추모식을 올해부터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 중 박물관과 관련한 준비는 완료돼, 오는 2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과거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에게 어음을 줬다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현찰로 받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 약속이 충분치 못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아이카와 박물관은 승용차 2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이며, 강제동원과 관련한 전시 공간 역시 박물관 전체의 10분의 1크기에 불과하다. 인근에 승용차 157대와 차량 3대를 주차할 수 있는 새로 지은 전시관이 있음에도 이곳에선 강제동원 관련 전시를 하지 않는다. 매년 열기로 한 추도식도 조선인보다 일본인을 추모하는 성격이 짙다. 외교부 관계자는 “합의 사항이 국내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우리 정부도 걱정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도 일본 국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한 공간에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외교부 제공

일본 정부가 약속 사항을 얼마나 성의있게 이행해 나갈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WHC 권고는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일본은 군함도 등재 당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강제동원 등 ‘전체 역사’를 알릴 시설물은 군함도에서 980㎞ 떨어진 도쿄에 설치했고, 조선인에 대한 인권침해도 기록하지 않았다. 등재가 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본 외교관리가 강제동원을 부인하기도 했다.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 대한 정부의 협조로, 일본이 향후 군함도 관련한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함도 관련 약속 미이행을 한국 정부가 묵인해줬다는 신호로 일본이 해석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간 논의 과정에서 군함도 문제에 대한 논의는 매우 더뎠다.

전날 정부가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은 일제히 비판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과거의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았는데, 미래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천진난만한 외교에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이 무너지고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 진보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군함도 등재 때도 합의를 뒤집어 뒤통수를 세게 쳐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등재 합의는)성실한 준수를 모두 확인하고 난 다음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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