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수해에 몸살 앓던 한반도…물난리 났던 곳은 어디?[청계천 옆 사진관]
● 100년 전, 한반도는 수해에 몸살
100년 전 파리 올림픽이 열렸다고 해서 당시 신문을 찾아보았는데 사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5월부터 진행된 올림픽은 1924년 7월 27일 폐막했습니다. 하지만 신문에서는 그걸 즐길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전국은 물난리로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100년전 한반도 수해 사진을 모아봤습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특히 대구 지역 피해 상황이 컸던 모양입니다.
기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7월 25일자 2면에 실린 단신 기사
경기 各郡 피해
그저께 이래의 호우로 인한 경기도 내의 피해는 아래와 같더라
◇ 수원
수원과 성안을 관류 하는 수원천은 증수(增水)가 12척으로 교량과 도로의 유실이 많고 제방의 제방의 증수는 약12,3척, 오산천의 증수는 10여척인데 피난민이 다수하고 수원과 남양 사이는 교통이 두절되었으며
◇용인
용인은 금도천 신갈천 삼계천을 비롯하여 각 처의 냇물이 각일각으로 증수되여가는데 신갈리에는 길위로 약 일 책 이상이 덮혔으며 침수가옥이 10여 호이고 교통은 대개 두절되었으며 주민은 피난 준비에 급급하는 중이더라 (23일 오후 9시)
7월 26일자 2면
한강 연안에 침수 370호
재작일(그저께) 오후 1시까지에 26척이나 증수된 한강은 그 후로도 더욱 물이 늘어가서 작일 오전 한시에 최고 30척에 달하였으므로 재작일 오전부터 증수에 대하여 비상경계를 하고 있는 용산경찰서에는 마침 경찰서 안에 예비하고 있던 순사 이십여명을 즉시 한강 연안 각처로 파견하고 또다시 연안 각 파출소에 즉각으로 증수의 시급한 것을 전화로 알리는 등 일시는 비상한 소동을 일으켰으나 그 후 한 시간 동안의 물은 또다시 일촌 가량 감수가 되었으므로 겨우 안심을 한 모양이었으며 이촌동(二村洞) 주민들은 이제야 말로 면할 수 없는 수해를 또다시 당하게 되리라고 최후의 굳은 결심을 하고 모두 세간과 의복 등 속을 묶어놓고 피난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작일 오전 10시경에는 29척5촌의 감수가 되어 점차로 물은 감하여 가는 중이라는 데 그 당시에 침수된 가옥들은 총계 372호인데 침수 가옥들은 전부 동막 관내 뿐이며 이외에도 구룡산 원정 사정목에 60호가 침수되고 이촌동에 40호 마포에 130호 가량이 물이 잠기게 되었으나 그 정도는 다행히 모두 마루 위와 마루 밑까지 물이 들어오고 말았다는데 이와 같이 위험이 박도하여 매일 용산 경찰서에서는 부 당국과 힘을 합하여 가지고 마포에는 마포 보통학교와 용산에는 용산 소학교를 각각 피난소로 정하여 놓고 쌀과 나물 반찬 등을 준비까지 하여 두고 또다시 용산서에서는 한강, 서빙고 인도교, 원정 사정목, 마포 동막 공덕리 제방 8곳에 부장 한 명에 순사 3,4인씩 배치를 하고 비상 경계를 하였다는데 이와 같은 물 소동이 생긴 후로 별로히 인축(人畜)의 손해는 없으나 이촌동에서 다만 어린 아이(4세) 한 명이 물가에 그만 떨어져서 죽었다더라.
7월 26일자 2면
각지 피해 - 전 조선을 음습한 수해상황
◇ 수원: 지난 17일부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여 연 8일간이나 계속하여 가옥에 침수가 되기 시작하였는데 우량은 3년 전 수원 명승고적인 화홍문 구간수 매향교가 파괴 유실될 때보다 많으나 그 때보다 내가 심히 넓고 시민의 방비로 많은 손해는 없으나 유실 가옥이 1호, 파회가옥이 2호 침수 가옥이 20여 호요 문안문박시장 가가이 10여처가 파괴되였고 전답의 손해가 많으며 선로도 서호 부근 둑이 무너졌으나 20여 평이나 무너진 둑을 인부 50여명을 드려 주야로 공사중이더라.
◇경상 각군의 피해
연일 내리는 호우로 말미암아 경북 관내의 수해에 대햐여는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그후 24일 까지 계속하여 내리며 지난 23일까지 경북도청에 도착된 보고에 의하면
경산 하양면 금락동 동산천에 4척의 물이 불어 영천과 하양 사이 교통 두절
성주 군내 각 냇물이 증수되어 대구 성주간 자동차 불통
영덕 군내 냇물이 불어서 영덕 영양 사이 자동차 불통
대구에는 이미 보도한 신정외에 23일에 마당에만 침수 되었다가 빠진 데가 동성정(동성동) 50호, 달성정(달성동) 54호, 봉래정(봉래동) 60호, 시장정(시장동) 5호, 덕산정(덕산동) 40호 등이었다.
함안에서는 지난 22일 아침부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그것이 점점 큰 비가 되어 종일 퍼붓는 비는 큰 가뭄 속에 있던 일반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더니 22일부터 시작한 비는 그치지 아니하여 가야면 말산은 그 넓은 벌판이 바다로 변하였더라
◇전남 각군의 피해
전주에는 22일 밤중부터 다시 큰 비가 오기 시작하여 23일 오전 10시까지 비가 와서 전주천은 증수 7척에 그쳤으나 완산교 일부가 파손되어 소방조는 만일을 경계 하였으며 전주역과 동산역 사이에는 오전 10시 55분 전주역 발차부터 운전되지 못하였더라.
◇충남 각군의 피해
공주 금강은 23일 정도까지 18척6촌이 증수되어 증수되여 도선은 중지.
예산은 교량 도로의 파손으로 인하여 덕산 대천 또는 당진 사이의 교통 두절
서산은 도로 파손으로 인하여 태안까지의 교통 두절
천안은 병천의 증수로 인하여 충북진천 사이의 자동차가 통하지 못하고 성황 가는 길은 교량이 무너져서 자동차가 통하지 못하며
연기는 대평리 도선장의 불통으로 인하여 대전 사이의 우편 두절.
● 치수 정책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 100년 전과 현재
신문에 실린 수해 사진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원시적이고 불완전한 형태였습니다. 당시 사진 기자들은 무거운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현장으로 나가야 했고, 필름 현상 과정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거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의 신문 기자들도 수해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사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기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해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을 겁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비해 조선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둑(제방) 수준이 형편없어서 피해가 크다는 기사에서는 기자들의 울분도 느껴집니다. 100년 전의 신문 사진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치수 정책이 얼마나 미흡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좁은 제방과 부족한 배수 시스템으로 인해 비만 오면 쉽게 범람하는 강과 하천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치수 상황은 매년 반복되는 수해로 이어졌고,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야기했습니다. 그 결과, 수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갔을 겁니다.
지금의 수해 취재는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고해상도의 이미지를포착하고 드론을 이용해 공중에서 찍은 사진,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수해 현장의 생생한 상황을 즉시 전파할 수 있게 해주며, 국민들에게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현재의 치수 정책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정부는 홍수 예방을 위해 대규모 제방 건설, 저수지 확충, 하천 정비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상 예측 기술의 발달로 홍수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적인 대처가 가능해지면서 수해로 인한 피해도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100년 전 기사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치수 정책이 발전했기 때문에 옛날같은 수해 사진은 이제 드물어졌습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 폭우가 내린 지역을 취재다니면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비만 오면 불안에 떨던 주민들이 이제는 큰 비가 와도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사전 대응에 많이 안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배수 펌프가 많이 설치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질도 올라가고 있는 것이겠죠? 물론 완벽한 대책은 없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폭우가 내릴 때도 있고,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치수 정책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이는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가 더 지속되어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우 현장에 출동한 사진기자들이 찍을 사진이 없어 지더라도 말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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