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목격하고, 두만강 건너 태국까지… ‘탈북 방탈출’서 평양 소녀 되다
“똑바로 보라! 눈을 감는 자는 반역자로 간주한다. 이 죄인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절대로 죄를 짓지 말라!”
영사기가 나무 기둥에 비춘 죄인의 영상이 연발된 총소리와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그 장면을 바라본 한 남성이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며 한탄한다. 그는 동료의 밀고로 ‘말 반동(反動)’ 혐의를 받아 노동교화소에 끌려간다. 이때부터 그의 가족은 탈북을 결심한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문화예술회관 앞에는 ‘탈북 방탈출’ 컨테이너 6개가 놓여있다. 작년 통일부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진행한 ‘덴바람 마파람’ 행사다. ‘덴바람’은 북쪽에서 부는 바람, ‘마파람’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단어로, “남북이 마음을 모아서 자유·인권의 바람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런 행사를 꾸몄다고 했다. 행사는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본지 기자가 지난 12일 오후 이곳에서 직접 방탈출을 해봤다. 약 한 시간동안 ‘향이’라는 평양 소녀가 되어 부모님과 함께 다섯 개 컨테이너를 넘나들며 탈북을 했다. 첫 번째 컨테이너에 들어서니 한국영화를 밀수해 유통한 혐의로 잡힌 남성이 총살 당하는 공개 처형장이 펼쳐졌다. 벽면에는 남성의 신원과 죄목을 적은 서류가 붙어 있었다. 이 서류들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을 단서 삼아 다음 방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야 했다.
문을 열자 주인공 향이의 방과 단출한 거실이 차례로 등장했다. 북한 교과서와 교복, 붉은 별이 새겨진 국방색 가방 등 소품들이 놓여 있는 향이의 방에서는 강압적인 북한 사회에 한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향하니 앞쪽 벽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와 함께 ‘당의 품은 우리 사는 집’이라는 표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방을 탈출하는 사이 향이 아버지는 동료의 밀고로 ‘말 반동’ 혐의를 받아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향이와 어머니는 평양에서 추방당해 함경북도 무산읍에 있는 허름한 집으로 쫓겨났다.
다음 등장한 무산읍 집과 노동교화소에서는 쫓기듯이 탈출을 도모해야 했다. 허름한 집에 숙박검열을 하겠다며 들이닥친 보위대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숙박 검열이다!” “커튼 걷어보라!”하는 강압적인 목소리며 가재도구가 떨어지는 소리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이런 시설이 있는지 믿을 수 없는 수용소 시설까지 지나자 가족이 넘어야 할 ‘두만강’이 나타 났다. 스피커에 울려퍼지는 군인들 소리를 들으며 잔뜩 움츠린 채로 ‘볼풀장 두만강’을 건넜다.
경비 서는 군인들이 쏘는 레이저를 이리저리 피하는 사이 부모님과 떨어진 향이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자유를 찾기 위해 기차를 타고 태국으로 향한다. 주제가 ‘탈북’이니만큼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지 기자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실제 탈북 과정은 어떤지, 한국에 오는 또다른 방법은 무엇인지, 도착한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등 궁금증이 일었다. 주최 측에서는 “실제 탈북자들이 태국, 라오스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곤 하는데, 그들의 ‘탈북 후기’를 모아 재구성한 내용”이라고 했다.
방탈출 프로그램을 제작한 차미리 전 북한인권시민연합 교육팀장은 “통일이나 북한인권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이미 고착돼 있고, 강연이나 컨퍼런스 위주로 진행되는 관련 교육과는 다른 것을 고민한 끝에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탈북, 북한인권이라는 주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 주제에 대한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과제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탈출 컨테이너는 작년 하반기에 인천, 대구, 부산, 서울에 설치돼 큰 호응을 받았다. 작년 하반기 이후로도 여러 지자체와 연락이 닿았지만 운영까지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우광호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북한인권이라는 주제를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앞두고 인천에서 ‘앵콜’을 요청해 마지막 행사를 연 것”이라면서 “지원 사업도 마무리된 만큼 방탈출 컨테이너는 아쉽게도 폐기 수순을 밟을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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