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중립성 [여의도가 왜 그럴까]
요즘 국민의힘의 단골 비판 대상 중 한 명이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여야 합의 없는 의사일정을 진행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돌아온 채 상병 특검법이 다시 상정된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여당과 우 의장이 날카롭게 충돌했다.
배 원내수석은 발언을 마친 뒤 우 의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의석으로 돌아갔다.
우 의장의 이런 태도를 지적하며 “인사 안 하고 가시냐. 늘 말씀드리지만 국회의장은 여도 야도 아니라 국민의 편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석에서 “사과부터 하라”는 항의와 “여도 야도 아니라고? 중립을 지키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우 의장을 향해 “퇴거 명령을 내려달라”며 “개판이네”라고 하자, 우 의장은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다.
하루가 지난 26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요구만 하면 받아주는 국회의장은 언제까지 민주당의 수장을 자처할 것인가”라며 “친정인 민주당만이 아닌 국회의 대표인 국회의장으로 속히 돌아오시기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제20조의2(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①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의장 당적 이탈 의무는 제5대 국회 때도 추가됐었다. 제3대 국회 때 있었던 이기붕 의장의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영향이 컸다. 1954년 11월 ‘초대 대통령만은 중임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헌안이 재적 203명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부결됐는데, 집권 자유당 소속 이기붕 의장은 개헌안 가결을 선포했다. 가결 요건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표인데, 이를 반올림하면 135표로도 통과된다는 논리였다.
국회의장이 대통령 종신 집권 기도와 당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장 권력을 휘두른다는 지적이 의장 당적 보유 금지 조항 신설로 이어진 셈이다.
국회 역사에서 의장의 당파적 의사일정 운영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 ‘직권상정 권한’이다.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을 상임위원회 의결 없이 곧바로 본회의에 올리는 것이 직권상정이다. 국회는 이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의장의 중립성을 꾀하고자 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의장은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혹은 ‘의장과 각 교섭단체 대표의 합의가 이뤄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직권상정 권한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중립적 의장’ 모델이 점점 강화돼 왔음에도 ‘당파적 의장’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우 의장에 대해 지난달 11일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18일에는 상임위 강제 배정 등에 대한 무효를 확인하기 위해 우 의장을 피청구인으로 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입법조사처는 이 같은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국회법이 상정하고 있는 이상적 의장 역할은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26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국회의장의 역할 갈등: 중립적 중재자인가, 당파적 지도자인가?’를 통해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은 현실을 수용해 다수당 대표형 의장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를 규정한 국회법 조문을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의사운영에 관한 의장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입법조사처는 덧붙였다.
입법조사처는 다만 “이런 변화는 큰 틀에서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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