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발코니(balcony)다. 흔히 베란다(veranda)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용어는 발코니가 맞다. 하지만 둘 다 본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한국식 용어’다.
원래 발코니는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돌출된 옥외공간을 뜻한다. 지붕이 없는 대신 난간이 설치돼 있다. 2층 이상 높이의 외부에 노출된 공간이다 보니, 발코니는 연단을 대신해 중요한 발표나 연설 등을 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콘클라베를 거쳐 선출된 신임 교황이 전 세계에 축복을 보내는 장소는 성 베드로 성당 중앙 발코니다.
흔히 거실쪽 발코니를 ‘앞 베란다’라고 한다. 거실쪽 발코니가 실내공간을 확장되고 안방쪽 발코니만 남겨져 있을 경우(보통 에어컨 실외기 등을 놓는 용도로 쓰인다), 그 발코니는 ‘안방 베란다’라고 부른다. 부엌에 닿아있는 공간은 면적과 공간 활용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적당히 넓고 앞 베란다에 준하는 창틀이 설치된 공간이라면 ‘뒤 베란다’, 세탁기와 보일러, 선반 정도만 설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은 다용도실이다. 다용도실을 제외하면 건축법상 올바른 표현도 아니고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단어지만 한국 사람이면 열이면 열 다 통하는, 전 국민의 은어인 셈이다.
원래는 건물 외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서비스 공간이어야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발코니를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근본적인 이유는 더 넓은 집에 대한 욕망이다.
“그래도 집 하나는 갖고 있어야지.” “서울 아파트는 무조건 오르지.”
세대를 거쳐 내재화된 부동산 불패 신화는 아파트 영끌로 이어졌다. 2023년 기준 한국 가계의 평균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8.6%에 달한다. 미국(28.5%)·일본(37.0%)·영국(46.2%) 등 선진국의 두 배에 달한다. 이렇게 힘들게 장만한 내 집인데 1평이라도 더 넓어야 마땅하다. 외부에 노출된 발코니는 낭비다. 창틀로 가리고, 장판을 깔고, 난방 공사를 한다. 그렇게 발코니는 거실과 안방의 일부, 완벽한 사적 공간으로 화(化)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한반도의 사계절 날씨 역시 발코니와는 결이 맞지 않았다. 땅에 묻는 대신 발코니에 모셔둔 장독은 겨울 칼바람에 깨지기 일쑤였다. 전용 면적으로 잡히지 않는 여유 공간은 소비자를 유혹했다. 1988년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발코니 관련 ‘난간 등의 설치 여부에 관계없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건축법 시행령 제101조 제1항 제3호). 입주 후 발코니에 창틀을 설치해 실내공간으로 전용하는 것을 사실상 인정하는 조치였다. 이후 창틀(새시)을 설치해 발코니를 실내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유행처럼 번졌다. 2000년대 초반 분양된 아파트에는 너비 2m에 ‘광폭 발코니’도 존재했다. 원체 넓다 보니 아예 식탁을 차려놓고 다이닝룸으로 쓰거나 아이 놀이방으로 쓰기도 한다.
발코니 확장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이었다. 시공사가 발코니 공사를 다 해놓고 입주 전에 다시 허물어 확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전 국민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보다 못한 정부는 2005년 발코니 확장공사를 합법화한다. 그 이후로는 ‘발코니는 없애야 제맛’이 됐다. 이때 바닥면적 산정에서 제외되는 발코니 너비를 1.5m로 제한한 탓에 광폭 발코니는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퇴장해야만 했다. 이제는 건설사도 설계, 분양 단계부터 아예 발코니 확장을 전제하고 진행한다.
발코니를 불필요한 공간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발코니는 건축물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 공간으로, 태풍·화재 등 재난 상황에서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발코니가 사라지며 더 구석진 곳으로 밀려난 대피 공간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잦은 것도 문제다. 일본에서는 주택 발코니에 창틀을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다. 지진에 발코니 유리 창문이 깨지거나 낙하,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인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옆집 발코니와 구분해주는 것은 얇은 경량 칸막이가 전부다. 일본에서는 발코니를 각 세대가 소유하는 개인 공간이 아닌 지진이나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는 공용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집에서 바람과 햇볕을 느낄 수 있는 야외 공간, 발코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유 교수는 2020년 국토교통부 주관 심포지엄에서 “속옷 바람으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발코니 및 테라스의 활성을 위해 건축 법규를 손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베란다, 아니 발코니를 최초로 도입한 아파트는 1958년 준공된 서울 성북구 종암동 종암아파트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아니다. 해방 이전에 지어진 서울 남산동 미쿠니아파트(三國商會アパート·1930), 광희동 채운장아파트(1934), 내자동 미쿠니아파트(1935), 충정로 충정아파트(1937) 등이 최초의 타이틀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각 아파트의 층수와 구조가 한국 건축법상 아파트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기 때문. 아무튼 해방 이후 한국 건설사가 시공한 첫 아파트가 바로 종암아파트다. 3개 동 152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집밖의 공용 화장실을 집안의 수세식 화장실로 편입시킨 선구자이기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낙성식(준공식)에 참석해 “이렇게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종암아파트에 있습니다. 정말 현대적인 아파트입니다”라는 축사를 남겼다.
당시 종암아파트 사진을 살펴보면 창문 없이 외부에 노출된 발코니가 눈에 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이불 빨래가 널려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광 소독으로 뽀송뽀송해진 이불에는 도무지 저항할 수 없다.
발코니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됐다. 이제 베란다가 남았다. 본래 베란다는 위층보다 아래층의 면적이 클 경우, 1층의 천장 쪽에 생기는 여유 실외 공간을 말한다. 일반적인 형태의 아파트에서는 당연히 존재할 리 없는 공간이다. 2층짜리 단독주택이나 몇 년 새 유행하고 있는 ‘테라스 아파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래층의 지붕을 위층의 공간을 쓴다는 점에서 엄밀히 따지면 테라스 아파트가 아니라 ‘베란다 아파트’라고 표기해야 옳다는 주장도 있다. 해외에서는 툇마루처럼 집의 측면에 붙어있는 공간에 벽 없이 지붕만 씌운 공간도 베란다라고 지칭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분명히 실외인데 지붕으로 덮인 곳에 둘러앉아 맥주를 들이켜는 장소는 십중팔구 베란다다.
원래 테라스(terrace)는 1층 내부 공간에서 외부로 뻗어 나온 공간을 말한다. 보통 바닥에 타일이나 목재, 벽돌 등 바닥재로 마감한다. 야외 휴식처 등으로 이용되며 건물 내부와 연결돼 있다. 카페 등에서 실외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는 자리가 테라스 되겠다. 땅(terra)라는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표면과 맞닿아 있다. 땅을 돋우고(성토盛土) 그 위에 마감한다. 데크(deck)는 1층에 나무나 합판 등으로 마루처럼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테라스와 용도가 비슷해 혼용해서 쓰곤 하지만 테라스와 달리 지표면에서 들어 올려져 떠 있는 형태다.
포치(porch)는 건물 현관 앞에 사방은 틔어있고, 위에만 지붕 등을 씌운 공간을 말한다. 서양식 주택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필로티(pilotis)는 건물 상층을 지탱하기 위해 줄지어 세워둔 기둥을 뜻한다. 건물을 1층 일부를 지상으로부터 분리해 주차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 아파트에서도 1층에는 기둥만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2층부터 거주 공간을 배치하는 필로티 구조 설계가 자주 보인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죄다 틀렸다. 그러니까 한국의 베란다=실은 발코니, 한국의 테라스=실은 베란다 이런 식이다. 누군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전 국민의 베란다가 된 이상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 오늘도 엄밀히는 발코니인 베란다에서 정확히는 베란다인 테라스 아파트를 내려다보는 수밖에.